‘프랑스에서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려면 대통령이 연금 개혁에 나서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우리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며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하는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이자 프랑스 국민들은 총파업으로 응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1기에 코로나19로 좌초했던 연금 개혁을 2기에 다시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웬만한 반발에도 유턴을 택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이다.

정년 연장 추진에 잇단 파업

유럽서 정년 가장 짧은 佛…마크롱 "연금개혁, 이번엔 끝까지 간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 연금 개혁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첫 임기였던 2019년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가 대규모 반대 시위와 코로나19 파장으로 중단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재선 공약으로 정년을 62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연금 개혁을 내세웠고, 지난해 4월 재선에 성공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0일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공약을 다소 완화해 2030년까지 정년을 64세로 연장하겠다고 나섰다. 연금을 100% 받기 위한 기여 기간도 2027년부터 현재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릴 계획이다. 프랑스 하원은 다음달 6일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 8개 노동조합은 지난 19일 112만 명(프랑스 내무부 추산)이 참여한 1차 파업을 벌였다. 2010년 이후 13년 만에 모든 노조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2010년 당시에도 연금 개혁이 이유였다. 노조는 오는 31일 2차 파업을 할 예정이다.

이들은 정년 연장이 어릴 때부터 일한 저숙련 근로자 등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정년 연장이 아닌, 증세 및 기업 부담 증액 등으로도 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 극우 및 좌파 정당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정치적 부담 없는 마크롱

연금 개혁은 정치적 반발이 큰 정책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1981년 정년을 65세에서 60세로 대폭 낮추면서 프랑스 연금은 빠르게 고갈됐다. 이후 제도 개편 필요성이 커졌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2010년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했다가 2012년 대선에서 패했다.

정치적 리스크가 큰 데도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왜일까. 외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잃을 게 많지 않다는 점을 든다. 프랑스 대통령은 단 한 차례 재선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임기 2기에 들어선 마크롱 대통령의 선택지에는 차기 대선 출마가 없다. 블룸버그는 “연금 개혁 과정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적 자본을 소모할 수밖에 없지만 물러선다면 ‘친기업 개혁가’라는 이미지를 잃게 된다”며 “좌·우파의 포퓰리즘에 맞서 중도파로서 승리를 거두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전했다. 하원에서 우파 공화당(LR)의 지지를 얻는다면 과반을 확보해 연금 개혁안을 처리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연금 개혁

프랑스 정부는 연금 개혁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의 현재 정년(62세) 및 연장 예정 정년(64세)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낮은 편이다.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의 현재 정년은 이미 60대 중반이다. 프랑스 남성은 평균 22.2년, 여성은 26.7년을 은퇴자로 보내며 연금을 수령한다. 반면 독일 남성은 평균 18.4년, 여성은 21.4년 동안 연금을 받는다. 연금 지출이 많을수록 재정 압박은 가중한다. 이미 프랑스 정부의 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112%(2021년 기준)로 부담이 상당하다. 프랑스 노동부는 연금 개혁으로 2030년까지 180억유로(약 24조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는 프랑스의 연금 개혁을 주시하고 있다. 연금 개혁은 매우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마냥 해결을 미룰 수만은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2050년까지 현재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반면 출산율 하락으로 청장년 인구 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유엔은 유럽과 북미에서 2019년 15~64세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65세 이상 노인 30명을 부양했지만, 2050년에는 5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결국 대부분 국가가 정년 연장, 연금 축소, 증세 가운데 선택해 연금 고갈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