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민간 용병회사 와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언론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영국 정부가 사실상 우회로를 열어줬다고 일간 가디언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립 미디어 플랫폼인 오픈 데모크라시가 입수한 소송 서류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지난 2021년 네덜란드 기반의 탐사 저널리즘 그룹인 벨링캣의 설립자 엘리엇 히긴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英, '와그너 용병 수장' 프리고진의 언론인 제소 우회 허용"
프리고진은 벨링캣의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면서도 소송은 히긴스 개인을 대상으로 제기했다.

이 소송은 런던에서 활동하는 법률 회사인 '디스크리트 로'가 러시아 법률회사와 함께 진행하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인 작년 3월 소송 대리 업무가 중단되면서 결국 무산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히긴스의 소송 대응 비용은 7만파운드(약 1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히긴스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보도에 복수하려는 소송"이라며 "소송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비용이 10만파운드에 달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프리고진이 이미 2020년부터 유럽연합(EU)의 자산 동결 등 제재를 받아온 상태에서 영국 법률회사가 소송 대행에 나선 것은 영국 재무부 산하 금융제재이행국(OFSI)의 허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디언은 소송 서류 등을 토대로 전했다.

프리고진은 2014년 와그너 그룹을 설립해 용병들을 시리아나 아프리카 지역 등에 투입하면서도 연루설을 부인하다가 벨링캣의 탐사 보도 등으로 연루 증거가 구체화하면서 EU의 제재 대상이 됐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제재받는 사람이라도 동결된 자산에서 소송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OFSI의 제도하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허가는 장관급의 관여 없이 단순히 (소송) 비용에 대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이 소송이 벨링캣의 근거지인 네덜란드가 아니라 영국에서 제기된 배경에는 영국의 명예훼손 법률이 언론인들에게 덜 우호적인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