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그룹장 "자원무기화, 10년 주기 반복…비축·공급망 분산·외교로 버텨야"
일본은 수입한 원재료를 가공해서 해외에 파는 수출 대국이면서도 에너지 자원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이다. 잊을 만하면 에너지 위기의 홍역을 반복해서 치르는 이유다. 그런 일본에서 고바야시 요시카즈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그룹장은 국제 에너지 시장 분석과 에너지 정책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고바야시 그룹장은 ‘자원의 무기화’를 대략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지정학적 이벤트로 정의했다. 무한히 지속될 위협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원 무기화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중 패권경쟁과 코로나19 확산, 탈(脫)석탄화 등 지정학적인 요소와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같은 자원 부족 국가는 무기화의 주기가 끝날 때까지 비축과 공급원 분산화, 자원외교 강화라는 세 가지 처방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일부 자원 부국이 리튬과 같은 광물 자원의 카르텔을 결성할 움직임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자원의 무기화는 왜 발생하는 것인가요.

“자원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면서 정치적인 이용 가치가 있는 전략 물자라는 두 가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 정세와 시장 수급에 따라 자원은 상품이었다가 전략 물자로 바뀌기를 반복합니다.”

▷어떤 경우에 자원이 무기로 바뀌나요.

“자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효과적인 외교 수단이 될 때입니다. 수급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원 수입국의 대체 수단이 마땅치 않을 때 자원 생산국은 자원을 무기화합니다. 1970~198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석유파동)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지속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까.

“자원의 무기화가 반복된다는 건 주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생산국이 자원을 무기화해 가격이 오르면 소비국은 대체 자원에 대한 투자를 늘립니다. 그러면 가격이 떨어지고 공급 병목현상이 해소되면서 무기화한 자원이 다시 상품이 됩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전통적인 에너지 자원의 무기화 주기는 대략 10년입니다.”

▷최근 상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 확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미·중 패권경쟁, 탈석탄화 시대 등 자원 무기화가 가능한 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겁니다. 전쟁과 패권경쟁 같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자원 무기화의 파급력은 더 커졌습니다. 또 탈석탄화 등 사회경제적인 변화로 무기화 대상이 화석연료에서 리튬 등 각종 광물 자원으로 확대됐습니다.”

▷여파가 더 크겠군요.

“미·중 마찰은 기존 자원 무역의 흐름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탈탄소화는 장기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광물 자원 무기화의 주기는 화석연료보다 길어질 수 있고요.”

▷일본은 오일쇼크와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등을 통해 뭘 배웠습니까.

“시장에 맡기기만 해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것도 시장 메커니즘에만 맡겼기 때문입니다. 경제 논리를 따르다 보면 가장 저렴한 중국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정부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만들어 정부 주도로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이유입니다.”

▷자원 빈국인 한국과 일본의 대처 방법은 무엇입니까.

“무기화의 주기가 끝날 때까지 자원 비축과 공급 수단의 분산화, 자원 외교 강화로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원 비축은 가장 쉽지만, 비축한 만큼만 효과가 있습니다. 분산화는 수입 상대국을 늘리거나, 해당 자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겁니다.”

▷일본의 분산화는 성공했습니까.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11.4%였던 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오늘날 13.4%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80.7%였던 중동 원유 의존도는 92.5%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자원 빈국의 분산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한·일 양국 간 협력도 가능할까요.

“한국은 난방 수요가 많은 겨울, 일본은 냉방 수요가 큰 여름 가스 수요가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이미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가스회사들이 계절에 따라 남는 천연가스를 유통하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자원 무기화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화석연료의 30% 정도만 전력 생산에 들어갑니다. 나머지 70%는 차량 연료, 섬유나 플라스틱 등 소재 등에 쓰입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은 해결할 수 있지만 화석연료가 담당하던 나머지 70%의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또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되면 핵심 광물인 리튬, 코발트 등 금속의 무기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리튬 가격이 급등하자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등 주요 생산국이 카르텔을 형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숱하게 등장한 자원 카르텔 가운데 성공 사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유일합니다. 원유 수급을 조정하기 위해 자국의 이익을 일부 희생하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국가 덕분이었습니다. 다른 광물 자원 생산국 가운데 사우디 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국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에너지정책 뒷받침한 최고 권위자
고바야시 요시카즈 그룹장은

고바야시 요시카즈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그룹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 에너지 시장 분석가이자 에너지 정책 전문가다. 일본 최대 정유회사인 에네오스 등에서 정유소 운전 계획, 원유탱커 용선 같은 현장 실무를 경험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경제학(석·박사)을 연구해 이론과 실무에 모두 정통하다.

탈석탄화 시대 화석연료의 역할, 아시아 신흥국의 비축 정책 등 다수의 국책 연구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일본의 에너지 정책이 탈석탄화로 전환하면서 2020년부터 이산화탄소 재활용과 수소 활용 분야(CCUS)의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일본의 에너지 정책과 중동 지역 에너지 외교>(2015년), <현대 일본의 지정학>(2017년) 등을 집필했다.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는 1966년 설립된 경제산업성 산하 국책 연구기관이다. 오일쇼크,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 등을 겪으며 중요성이 커졌다. 석유정보센터(1981년), 에너지계량분석센터(1984년), 중동연구센터(2005년) 등이 차례로 연구소 산하에 설립됐다.

△1973년 출생
△1996년 히토쓰바시대 졸업
△1996년 에네오스 입사
△2004년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석·박사
△2018년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 그룹장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