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우크라 지원 제한·평화협상론 커져…"지속 지원 극적 호소"
젤렌스키 "바이든에 10대 평화공식 제시"
"젤렌스키 방미, 흔들리는 미국 내 지원 여론 붙잡기 포석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을 전격 방문한 데 대해 최근 무조건적인 지원에 대한 반대 여론이나 평화협상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미국 내에서 지원 여론을 환기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300일을 맞은 21일(현지시간) 미국을 깜짝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 미 의회에서 연설했다.

그가 외국을 방문한 것은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그간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패전까지는 외국 땅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CNN, BBC, 가디언 등 영미권 언론은 이번 방미가 미국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한정 지원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이뤄졌다는 데 주목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3분의 1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계속 지원하는 데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우크라이나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로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는 응답은 절반에 달했다.

내년 1월 출범하는 차기 미국 의회에서 하원 다수당이 되는 공화당은 중간선거 캠페인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큰 예산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 요청을 의회에서 무조건 수용해 통과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거나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식 지원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다.

CNN 방송은 이번 방미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상징한다면서 "겨울이 다가온 가운데 러시아가 민간 기간시설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국제사회의 지속적 지원을 극적으로 호소할 시기가 무르익은 셈"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대의가 초당적 가치임을 강조했다.

"젤렌스키 방미, 흔들리는 미국 내 지원 여론 붙잡기 포석도"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내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유와 민주주의, 주권과 영토 보존의 핵심 원칙에 대한 공격'으로 언급하며 미국의 굳건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미 의회는 449억달러(약 57조7천4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포함된 2023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예산안 처리를 좀 더 쉽게 만들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가 저녁 케이블TV 뉴스를 이끌 것"이라며 "이번 방문은 미국이 얼마나 우크라이나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지 되새기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BBC 방송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새해 공화당이 처리할 일 중 최우선에 올려놓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의 방미는 이 의제(우크라 지원)를 완전히 내려놓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는 주목받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런 의도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CNN은 공화당 의원 일부가 무제한 자금 지원에 항의하는 뜻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 불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젤렌스키의 연설 후 트위터 등에 지지글을 올리기도 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지금껏 들은 것 중에 가장 감명 깊은 연설이었다"라며 "그들은 미국에 대신 싸워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 필요한 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다"라고 썼다.

롭 포트만 의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밝히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일 것이 아니라 더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사회에서 종전협상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젤렌스키 방미, 흔들리는 미국 내 지원 여론 붙잡기 포석도"
그러나 실제 협상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도 '주권과 영토'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없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다만, 그는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10개 항목의 '평화 공식'을 제시했다고 이날 미 의회에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늘 우리의 평화 계획을 지지했기에 기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공식이나 평화협상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는 러시아의 협상 의지와 국제 법질서의 회복에 달려 있다고 전제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 화상 연설에서 10개 항의 평화공식을 제시했다.

이는 ▲ 핵 안전 ▲ 식량안보 ▲ 에너지 안보 ▲ 포로 석방 ▲ 유엔 헌장 이행 ▲ 러시아군 철수와 적대행위 중단 ▲ 정의 회복 ▲ 환경 파괴 대처 ▲ 긴장 고조 예방 ▲ 종전 공고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