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미국 동부시간으로 15일 새벽 유럽중앙은행(ECB)은 통화정책회의를 마치고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50bp 올려 2.5%로 높였습니다. 지난 9월, 10월 연속으로 75bp씩 인상했었는데, 그 속도를 낮춘 것입니다. 하지만 통화정책 성명서는 매파적이었습니다. ECB는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6.3%(9월 5.5%)로 높인 뒤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목표보다 오랫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금리를 상당히 더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자회견에 나선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한술 더 떴습니다. "이번 결정은 전환(pivot)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갈 길이 멀다. 또 다른 50bp 인상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내년 1분기 가볍고 짧은 경기 침체가 있을 것이다. 2023년에 0.5% 성장을 예상한다"라며 그렇게 강조했습니다. 침체를 각오하고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고 대놓고 얘기한 것입니다. 라가르드는 "미 중앙은행(Fed)보다 갈 길이 멀다"라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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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파적이었던 전날 Fed의 연방 공개시장위원회(FOMC)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ECB가 또다시 매파적 충격을 안긴 것이지요. 독일 국채 2년물 금리는 24bp 뛴 2.36%를 기록,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9월 이후 최고로 치솟았고 유로화는 1유로당 1.0737달러로 6월 초 이후 최고로 뛰어올랐습니다. 유럽 증시는 2~3%씩 급락했습니다. 헤지펀드 텔레메트리의 토마스 손튼 설립자는 "이보다 더 매파적이었던 ECB 미팅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 JP모건은 ECB의 최종금리 예상치를 기존 3%에서 3.75%로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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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시 개장 전인 오전 8시 30분부터 공개된 경제 지표들도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실망을 안겼습니다.

① 소매 판매 감소

11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0월 1.3% 증가뿐 아니라 월가 예상(-0.3%)을 크게 밑돌며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월가는 자동차(-2.3%)가 이달 초 발표된 판매량 감소로 소매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휘발유 값 하락도 판매액 측면에서는 감소(-0.1%)로 나타나는 탓에 수치를 낮출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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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대 쇼핑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포함된 11월에 이렇게 악화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존 등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역대급 할인 행사를 벌였음에도 온라인 판매 역시 전월보다 0.9% 줄었습니다(할인 효과, 즉 가격 변동을 통제해도 0.3% 감소함). 자동차, 휘발유, 식품 서비스 및 건축자재 등 변동성이 큰 항목을 뺀 '통제 그룹'도 전월 대비 0.2% 감소했습니다. BMO캐피탈마켓의 살 과티에리 이코노미스트는 "11월에도 소비가 이어지지 않은 건 소비자들이 침체 우려와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여파를 느끼며 지출에 훨씬 조심스러워졌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ING는 "Fed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전투에 집중하면서 75bp 추가 인상을 예고하는 환경에서 이런 소매 판매 수치는 경기 침체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년 대비로는 6.5% 늘었지만,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7.1%를 고려하면 0.6% 줄어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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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산업생산 감소

11월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2% 줄어 예상치인 0.1% 증가보다 부진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네 번째 감소세입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업이 지난 6월 이래 처음 감소(-0.6%)한 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BMO는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지출을 상품에서 서비스로 되돌리고, 더 높은 금리의 영향이 경제에 전달됨에 따라 앞으로 몇 달 동안 산업생산은 점점 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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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뉴욕, 필라델피아 제조업 위축

뉴욕 연방은행이 집계하는 12월 엠파이어 스테이트 제조업 지수는 전월보다 15.7포인트 하락한 -11.2를 기록해 또다시 위축 국면에 빠졌습니다. 예상(-1.0)을 크게 밑돕니다. 필라델피아 연은의 12월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도 -13.8로 집계됐습니다. 전달 -19.4에서 소폭 올랐으나 역시 4개월 위축 국면을 유지했습니다. 역시 예상(-12)보다 낮았습니다.

④ 기업 재고 덜 증가

10월 기업 재고는 전월보다 0.3% 늘어났습니다. 예상이 0.4% 증가였는데, 침체 위험이 커지자 기업들이 재고 확대를 늦추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⑤ 실업 급여 청구 감소

지난 10일로 끝난 신규 실업 급여 청구 건수는 전주보다 2만 건 줄어든 21만1000건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상(23만2000건)을 큰 폭으로 밑돈 것으로 석 달 만에 최저 수준입니다. 또 계속 실업보험 청구 건수는 167만1000건으로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채권 전략가는 "노동시장은 Fed에게 여전히 너무 빡빡한 상태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Fed의 매파적 공세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우울한 경제 지표가 쏟아져 나오자 시장은 침체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나쁜 뉴스가 나오면 Fed가 돌아설 것"이라는 말은 더 통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뉴스가 그야말로 나쁘게 작용한 것이죠. 게다가 유럽은 1분기 침체가 공식화됐고 오늘 발표된 중국의 경제 지표(11월 소매 판매 -5.9%, 11월 산업생산 2.2%)도 엉망이었습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글로벌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오전 9시 30분 0.5~1.3% 수준의 내림세로 출발한 주요 지수는 하락 폭을 확대했습니다. 결국, 다우는 2.25%, S&P500 지수는 2.49% 떨어졌고 나스닥은 3.23%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그것도 저점(다우 2.8%, S&P500 2.9%, 나스닥 3.54%)에서 소폭 회복한 것입니다. UBS자산운용의 나디아 로벨 전략가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오늘 시장 후퇴는 놀랍지 않다. 그동안 시장은 Fed가 그들이 하겠다고 말한 걸 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상승했다. 그런데 Fed는 어제 분명히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이미 주가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2023년 상반기 성장 둔화를 반영해 가격이 다시 책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시장은 기술적으로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11월 초 랠리가 시작된 뒤 S&P500 지수는 지난 한 달 이상 3900~4100 사이에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3895.75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 막판 3900선 회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아트 캐신 UBS 이사는 CNBC 인터뷰에서 "S&P500 지수가 3900선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매도세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노무라의 찰리 맥엘리엇 분석가는 S&P500 지수가 3933 아래에서 마감이 되면 퀀트 펀드인 CTA 펀드에서 30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주식(S&P500 관련 110억 달러)을 매도해야 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산타 랠리 희망은 옅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침체 공포는 채권 시장에도 닥쳤습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후 2시 40분께 3.3bp 하락한 3.446%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 3개월 내 최저 수준입니다. 반면 2년물은 2.5bp 오른 4.242%를 기록했습니다. 기준금리를 좇는 2년물 금리는 여전히 기준금리(4.25~4.5%)의 하단 밑에 머물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기준금리가 2년물 금리 이상으로 높아지면 과거 Fed의 금리 인상이 중단됐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경기 침체 징후로 여겨지는 2년/10년물 수익률 곡선은 더 벌어졌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2년물 금리에서 보듯 어제 FOMC 이후 시장과 Fed의 간격은 커졌습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Fed 워치 시장을 보면 2월에 25bp, 3월에 25bp를 올린 뒤 금리 인상을 끝낼 것으로 봅니다. 그런 베팅이 50%에 달합니다. 최종금리 4.75~5%를 보고 있는 것이죠. Fed가 점도표에서 제시한 5~5.25%까지 오를 것이란 베팅은 20%대에 그칩니다. 파월 의장이 내년에는 금리 인하가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는데도 내년 하반기 두 차례(50bp) 인하를 예상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크 카바나 채권 전략가는 "시장은 "Fed가 '높은 금리를 오래 유지하겠다'(higher for longer)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믿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장은 Fed가 금리 인상을 중단하는 순간 6~9개월 뒤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씨티그룹은 '시장에 도달하는 데 실패한 매파적 메시지'(Fed failed to drive a tougher tone on policy)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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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투자자는 Fed가 금융여건 완화를 우려해 시장을 겁주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애시워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 근원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점점 더 설득력 있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Fed는 매파적 태도를 두 배로 키웠다. Fed 위원들이 정말 자신들의 경제 및 금리 전망을 믿는지, 아니면 지난 한 달 동안 금융여건의 완화를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우리는 Fed의 경제 전망(SEP) 변경 논리와 의장 논평을 따르기 어려웠다. 두 가지 모두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내년 2월에 최종적으로 25bp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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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Fed와 시장과의 간격은 침체 공포가 커질수록 커집니다. 시장은 침체 때문에 Fed가 예고한 만큼 긴축하지 못할 것으로 보지만, Fed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기 침체를 원하거나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스탠더드차터드는 "우리는 Fed가 2월에 25bp를 올린 뒤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란 예상을 유지한다. 이는 FOMC 점도표 최종금리보다 50bp 낮다. 경제 활동의 둔화가 3월 FOMC에서 금리 인상을 중단을 충분한 동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매파 물결→침체 공포, '산타 랠리'는 없다?
게다가 지금 Fed가 집중하고 있는 곳은 노동시장입니다. 파월 의장은 어제 11월 소비자물가(CPI)에 대해 "이런 더 나은 인플레이션 보고서를 환영한다. 그러나 상품과 주거비 인플레이션에 대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큰 이야기는 나머지 부분(주거비를 뺀 서비스 인플레이션)이 될 것이며 거기에는 많은 진전이 없다. 그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오늘 좋지 않게 나온 소매 판매와 산업생산, 제조업 지수 등은 모두 상품 관련 지표입니다. 하지만 Fed는 보는 곳은 상품 쪽이 아닙니다. 서비스물가, 그리고 그걸 높이는 빡빡한 노동시장입니다. 오늘 실업 급여 청구 건수에서 보듯 노동시장과 임금 상승세는 여전히 강합니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이 추산하는 임금 상승률(wage growth tracker)은 6.4%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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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관계자는 "오늘 데이터는 경기 침체 걱정은 키웠지만, Fed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은 전혀 덜어주지 못했다. 경기는 둔화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은 꺾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근원 물가가 6%에 달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Fed의 정책 실수(경기 침체)는 불가피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Fed의 리처드 클라리다 전 부의장(핌코 고문)은 오늘 'Fed와 싸우지 말라. 그러나 실마리를 놓지 말라'(Don’t Fight the Fed, But Don’t Lose the Thread)라는 글에서 "얕은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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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임금 상승률이 연 5% 이상이고 생산성은 1.25% 속도로 개선되고 있는 만큼, Fed가 2%대 인플레이션 목표를 이루려면 임금 상승률이 1~2%포인트 감소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이런 임금 상승률 하락은 경기 침체에서만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업률의 경우 지난 9월 3.5%까지 떨어졌지만, Fed는 어제 경제 전망(SEP)에서 1%포인트 이상 오른 4.6%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얕은 경기 침체가 발생했던 1990년과 2001년 실업률은 각각 1.3%포인트와 1.2%포인트 상승했고 임금 인플레이션은 각각 1.0%포인트와 0.8%포인트 떨어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클라리다 전 부의장은 "요컨대, 현 상황에서 최소한 얕은 경기 침체를 피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파월 의장이 8월 잭슨홀 연설에서 밝혔듯이, 그와 FOMC는 물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하기로 했고 나는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시장이 만약 Fed를 믿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통상 혼란과 불확실성이 심화합니다. Fed는 자신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더 많은 행동으로 밀어붙이게 되고, 시장에선 이에 반하는 베팅을 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게 되니까요. KPMG의 다이앤 스웽크 이코노미스트는 "Fed는 매파적으로 나가고 시장은 비둘기파적으로 보고 있다. 이럴 때 Fed는 금융여건을 긴축시킬 수 없으므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더 커진다. 금융여건이 자체적으로 긴축되지 않을수록 Fed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빌 더들리 전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시장이 Fed를 무시할 때는 Fed는 더 많이 밀어붙여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찰스 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전략가는 "적어도 지금부터 내년 2월 FOMC 회의까지 주식 및 채권 시장 전반에 걸친 변동성이 예상된다. 시장 금리가 더 상승할 여지가 없다고 추론할 수 있지만, 파월 의장은 Fed가 인플레이션을 지속해서 낮추는 데 필요한 요소로 경제 성장 둔화를 원하고 예상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