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엔비디아와 퀄컴, IBM, 바이두 등을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고객으로 확보했다. 약 1~2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이르면 2024년께부터 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스마트폰, 서버 등에 들어가는 고성능 반도체가 삼성전자의 3㎚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에서 양산된다는 뜻이다. 2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고성능컴퓨팅(HPC) 칩을 설계하는 5~6개 미국·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와 3㎚ 공정용 반도체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IBM(서버용 중앙처리장치), 엔비디아(그래픽처리장치), 퀄컴(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바이두(클라우드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 칩) 등이 대표적인 팹리스 고객사다.이들 고객사는 3㎚ 공정 기술력, 복수의 공급망 확보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삼성전자를 위탁 생산업체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최근 TSMC에 밀렸던 삼성전자가 3㎚ 공정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4~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에선 TSMC에 뒤처졌습니다. 하지만 3㎚는 다릅니다.”심상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이 지난 15일 열린 기관투자가 대상 사업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1~2년간 4~5㎚ 파운드리 공정의 고객 확보전에서 TSMC에 밀렸다. 퀄컴,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이 주력 칩 위탁생산을 잇달아 TSMC로 돌렸다. 하지만 최신 3㎚에선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심 부사장은 “3㎚ 공정은 게임체인저”라고 강조했다. 3㎚ HPC 칩 다수 고객사와 개발2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와 TSMC 등 주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의 최전선은 3㎚ 공정이다. 3㎚는 반도체에서 전자가 다니는 길의 폭(선폭)을 뜻한다. 폭이 좁을수록 고성능·저전력 반도체 생산이 가능하다.삼성전자의 자신감은 3㎚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에 관심을 보이는 다수의 글로벌 고객사 영향으로 분석된다. 현재 엔비디아, 퀄컴, IBM, 바이두 등 다수의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가 3㎚ 공정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인공지능(AI)·네트워크용 반도체 등 고성능컴퓨팅(HPC) 칩을 양산하는 방안을 삼성전자와 논의 중이다. 초미세 공정 파운드리 수요 커져고객사들이 삼성전자 3㎚ 공정에 관심을 두는 이유로는 ‘기술력’이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30일 “세계 최초로 3㎚ 공정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3㎚ 공정에서 양산된 반도체는 현재 주력 공정인 5㎚ 공정 칩 대비 전력효율과 성능이 각각 45%, 23% 향상된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면적도 16% 줄어든다.HPC 칩은 슈퍼컴퓨터, 서버, PC 등에 들어가 ‘두뇌’ 역할을 한다. 크기가 작고 성능이 뛰어나면서 전력효율이 높을수록 좋다. 파운드리업계 관계자는 “최근 AI, 5G 기술 발전이 진행되면서 HPC 칩 고객사들이 점점 ‘고사양’을 원하고 있다”며 “3㎚ 공정에서 칩을 양산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지정학적 위기에 ‘반사이익’파운드리에 칩 양산을 맡기는 팹리스들이 지정학적 위기 등의 이유로 ‘복수 공급사’ 전략을 쓰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 3㎚ 공정이 인기를 끌고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엔비디아 같은 팹리스들이 TSMC에 칩 생산을 위탁했다면 요즘엔 TSMC와 삼성전자에 물량을 나눠서 준다는 것이다.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특히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엔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지정학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고객사들이 ‘제2의 파운드리 업체’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반도체 후공정(OSAT)업체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지정학적 위험 때문에 대만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고 말했다.삼성전자 경쟁자인 TSMC도 3㎚ 공정 고객 확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지난 21일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 3㎚ 공정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에만 위탁생산을 맡기는 게 아닐 것”이라며 “TSMC보다 더 많은 모델과 물량을 따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과거에는 정보기술(IT) 담당자가 ‘큰 문제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이들이 다루는 정보·데이터·지식이 곧 회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릭 루이스 IBM 시스템즈 부회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전환(DX)을 서두르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IT 부서의 위상이 달라졌다”며 “이제는 모든 기업이 IT 기업”이라고 말했다.루이스 부회장은 “요즈음 주요 기업들은 이사회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이나 랜섬웨어(사용자의 업무를 중단시킨 후 대가를 요구하기 위해 심어놓는 악성코드의 일종) 대응까지 논의하고 있다”며 “경쟁사와 다른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데이터에 있다는 인식이 커지는 중”이라고 말했다.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지만 IBM의 실적은 아직 견조하다. 최근 IBM이 발표한 3분기 매출(141억달러)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늘어났다. 인프라스트럭처 부문(34억달러)의 매출 증가율이 14.8%로 가장 높았다. 소프트웨어 부문(58억달러)은 레드햇을 중심으로 매출이 7.5% 늘었고, 컨설팅 부문(47억달러)은 5.4% 증가했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는 “(4분기를 포함해) 연간 기준으로도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루이스 부회장은 각국 현장에서 경기 침체의 신호를 느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기업 간 거래(B2B) 매출에서 침체 징후를 보지 못했다”며 “모든 비즈니스가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어서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도 IT 관련 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IT가 기업의 물리적인 기반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위한) 차별화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미래에 IBM의 경쟁자는 누구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특정한 기업을 떠올리기는 어렵다”며 “디지털 전환 자체가 가져올 변화가 IBM의 미래를 가장 많이 규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와 관련해 “IBM이 글로벌 공급망 이슈가 발생했을 때 비교적 수월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19 전 디지털 전환을 해둔 덕분”이라고 했다.루이스 부회장에 따르면 IBM은 3년 전 글로벌 공급망 전환을 시작했다. 1단계로 주요 사이트나 공장의 운영을 간소화하고,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회복할 수 있는지를 점검했다. 2단계로는 특정 공급망에 문제가 생겨도 대체 가능하도록 표준화 작업을 했다. 이때 디지털 전환이 주로 이뤄졌다. 3단계에서는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서 문제점을 빠르게 찾아내고 대응하는 데 중점을 뒀다.이런 투자는 코로나19 기간 각국의 셧다운 등으로 기존 공급망이 틀어지면서 빛을 발했다. “코로나19가 올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단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루이스 부회장은 설명했다.IBM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공급망 관리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기술을 활용해 관리의 복잡성을 줄이고 자재 출하나 부품 공급 등 문제점을 신속하게 예측해서 대응하는 일은 모든 고객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루이스 부회장은 “우리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여정의 초기 단계에 들어와 있을 뿐”이라며 “고객이 이 여정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향후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정의했다. “IBM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설팅 역량을 모두 다 보유하고 있어 고객의 상황에 맞춰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그것이 IBM이 가진 역량”이라고 그는 덧붙였다.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