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또다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은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즉각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러시아 인권이사회 연례회의에서 “러시아는 미치지 않았다. 가장 앞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면도날처럼 휘두르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우리는 핵무기를 방어 수단이자 잠재적 반격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 본토 얻어맞자…푸틴, 또 '핵 위협'
그는 이어 “우리는 타국 영토에 전술핵을 포함한 핵무기를 설치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터키와 여러 유럽 국가에 전술핵무기를 두고 있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이 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무인기(드론)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향해 영토 방어를 위한 핵무기 사용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란 얘기다. 지난 5일 러시아 랴잔주 랴잔시, 사라토프주 엥겔스시의 군사 비행장 두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세 명이 숨지고 비행기 두 대가 손상됐다. 6일에도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쿠르스크주의 비행장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선의의 표현으로 ‘러시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공언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확답을 거부했다. 그는 “만약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버리면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확률이 높지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의 전황이 매우 불리해져 푸틴이 승전을 위해 과감한 도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술핵 사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국방정책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리처드 폰테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기고문에서 “확률은 낮지만 오늘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태인 핵전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특별군사 작전은 긴 과정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전쟁을 통해) 새로운 영토가 생기고 아조우해가 내해로 전환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BBC는 “전쟁 초기부터 신속한 승리를 계획하고 강조해온 푸틴 대통령이 작전이 길어지고 있음을 인정했다”며 “불리해진 전황과 러시아군의 패전 결과를 일부 수용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 주최 행사에서 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러시아가 내년 봄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전쟁의 평화적 종식을 위한 조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관련 언급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핵무기와 관련한 절제되지 않은 발언은 절대적으로 무책임하다”며 “냉전 이후 국제사회가 도모해온 핵무기 비확산을 위한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