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부 생명 위협시 낙태 면책' 정부개정안에 반발…국민 약 62% 반대
총리실 앞에 대형 신생아 사진…몰타 수천명 낙태 반대 시위
가톨릭의 나라 몰타에서 정부가 낙태 금지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몰타 일간지 타임스오브몰타에 따르면 4일 오후(현지시간) 몰타 수도 발레타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가두 행진에 나섰다.

시위대는 총리실 앞 계단에 대형 신생아 사진을 걸고 정부에 낙태 금지법 개정 중단을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시위가 몰타에서 최근 수년간 최대 규모의 시위라며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와 야당 지도자, 마리-루이즈 콜레이로 프레카 전 대통령도 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낙태를 몰타에서 몰아내자',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자' 등의 슬로건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총리실에서 법원까지 행진하며 "낙태에는 노(no), 생명에는 예스(yes)"를 연호했다.

지난주 크리스 펀 몰타 보건장관이 낙태 금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주최 측은 약 2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지중해의 소국 몰타의 인구가 지난해 기준 51만여 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적잖은 규모다.

인구의 98%가 가톨릭 신자인 몰타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법적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도 예외는 없다.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은 최대 징역 3년 형, 의사는 최대 4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총리실 앞에 대형 신생아 사진…몰타 수천명 낙태 반대 시위
개정안은 임신부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될 때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낙태가 쉽고 무분별하게 이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로버트 아벨라 총리가 이끄는 몰타 정부는 의회에서 넉넉한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어 법안 통과에는 무리가 없지만 악화하는 여론이 부담스럽다.

최근 설문조사에선 몰타 국민의 61.8%가 낙태 금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몰타인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톨릭 지도자들도 여론전에 나섰다.

시클루나 대주교와 요제프 갈레아 쿠르미·안톤 테우마 주교는 지난 2일 의원들에게 공개 서신을 보내 낙태 금지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조지 벨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몰타 정부가 낙태 금지법 개정에 나선 데에는 미국 관광객 안드레아 프루덴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여름 몰타로 태교 여행을 떠났던 임신부 프루덴테는 여행 중 자궁 출혈을 겪었으나 몰타에서 낙태 수술을 할 수 없어 결국 스페인으로 긴급 이송됐다.

해당 소식은 전 세계적인 논란으로 번졌고, 낙태 금지법 개정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유럽에서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국가는 몰타를 비롯해 안도라, 리히텐슈타인, 폴란드, 바티칸시국까지 5개국뿐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