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견인한 3세대 최고지도자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96세를 일기로 30일 사망했다.
마오쩌둥·덩샤오핑 이은 '3세대 최고지도자'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별세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등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여러 장기 기능이 쇠약해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이날 숨을 거뒀다.

당 중앙위 등은 "장쩌민 동지의 서거는 우리 당과 군, 각 민족 인민에게 있어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며 "당 중앙은 모든 사람에게 슬픔을 힘으로 바꾸고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며 실제 행동으로 애도를 표하기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정 전 주석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였던 덩샤오핑을 이어 집권한 3세대 지도자로 분류된다. 재임 기간 성장 가속, 구조 개혁 등을 통해 중국을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려놨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2위 경제대국' 견인한 장쩌민 전 중국국가 주석
1926년 중국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난 장 전 주석은 상하이 자오통(交通)대학교에서 전기과를 졸업했다. '문화 대혁명' 기간 당과 공직에서 추방당해 10년 동안 피신생활을 하기도 했다.

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 사망후 80년대개혁과 개방시대가 열리면서 장쩌민은 본격적으로 정치권 핵심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그가 최고지도자 반열에 올라선 계기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였다. 당시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그는 당 총서기에 올랐다. 이후 1993년 3월 국가주석까지 맡으며 중국 최초로 당(黨)·정(政)·군(軍)의 모든 권력을 거머쥔 뒤 2003년까지 중국 최고 지도자로 재임했다.

장 전 주석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준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 3월 국가주석직을 이양했지만, 2004년 9월까지 권력의 핵심이라고 평가받는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을 거쳐 최고 지도자에 오른 고인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과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긴 채 실력을 키움)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 중국의 비약적 경제 성장을 일궜다.

그가 당 총서기가 된 1989년 1조7200억 위안(약 319조원)이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실질적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약 7배인 12조1700억 위안(약 2260조 원)을 기록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국 방문한 중국 최초의 주석…'한중관계 기틀'
고인은 재임 기간 강력한 경제개혁을 실시해 중국의 경제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5년에는 중국 최고지도자로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재임 기간 굵직굵직한 정치, 경제, 외교의 이정표를 세웠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홍콩(1997년)과 마카오의 반환(1999년) 등이 그의 임기 동안 이뤄졌다. 퇴임 이후에도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자랑했지만 시진핑 독체 체제가 시작되면서 전직 국가원수 예우만 받고 있다.

이런 '빛'과 함께 '그림자'도 있다. 민주화 운동가들과 파룬궁에 대한 탄압 등 인권 침해 관련 지적과, 그의 재임 기간 경제 성장의 뒷그늘에서 심화한 빈부격차, 관리들의 부정부패 등은 비판의 소재로 언급된다.

장 전 주석의 대표 사상은 '3개 대표 이론'이다. 전통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척받는 자본가 계급을 끌어안는 것이 골자다. 이는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중국공산당 당헌(黨章)에 '3개 대표 중요 사상'으로 정식 삽입됐다. 은퇴 이후에도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원로로서 중국 정계에 깊숙이 개입하며 현역 지도자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대화하는 故 장쩌민 전 주석. 사진=연합뉴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대화하는 故 장쩌민 전 주석. 사진=연합뉴스
중국 포털사도 '흑백화면'으로 애도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기에는 상하이방이 시 주석의 '정적세력'으로 분류되면서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 등장한 것을 마지막으로 외부 공식 활동을 중단했고, 지난달 열린 제20차 당 대회에도 주석단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불참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왕예핑 여사, 장남 장멘헝, 차남 장멘캉이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임을 맡은 장례위원회는 '추도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베이징 톈안먼, 인민대회당, 신화문, 외교부, 해외의 대사관 및 영사관 등에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또한 재외공관 등에 빈소를 마련해 외국 인사들의 조문을 받기로 했다. 다만 중국 관례에 따라 외국 정부, 정당, 우호 인사 등의 조문단은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장례위는 전했다.
사진=바이두 캡처
사진=바이두 캡처
장 전 국가 주석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온라인 사이트들은 일제히 흑백화면으로 전환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중국 국무원과 외교부 등 주요 정부 기관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관영 매체 홈페이지들 역시 포털화면을 흑색으로 변경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