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시장이 ‘블랙프라이데이’ 특수를 누리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요 둔화가 올 연말뿐 아니라 내년 내내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 기존 가격 정책을 고수했던 HP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특수가 사라지면서 시장 점유율을 경쟁사에 뺏기기 시작했다.
델 “PC 출하량 올해 17~20% 감소”
26일(현지시간) 투자정보매체 마켓워치는 “PC 판매고가 사상 최악의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며 “블랙프라이데이에도 불구하고 PC 업계가 이번 분기에 흑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마켓워치는 PC 시장 침체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 상승으로 생필품 지출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PC를 비롯한 전자기기 구매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PC 시장은 20여년 만에 최대 규모로 위축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세계 PC 출하량은 6800만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8445만대) 대비 19.5%가 줄었다. 이 감소폭은 이 업체가 출하량 조사를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최대다. 키타가와 미카코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공급망 문제는 완화됐지만 개인소비자·사업자 시장 모두에서 PC 수요가 약해지며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지난 2년간 소비자 상당수가 이미 새 PC를 장만했기 때문에 업계 판촉과 가격 인하도 그 효과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부진한 실적을 발표한 델도 수요 악화를 예상하고 있다. 델의 지난 3분기 매출은 247억2000만달러(약 33조1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 줄었다. PC 부문 매출은 같은 기간 17%나 줄었다. 토머스 스윗 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 4분기엔 실적 감소 폭이 더 가파를 것”이라며 “경제성장 둔화, 물가 상승, 치솟는 금리, 달러 강세 등의 거시경제 요인이 수요를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델의 올해 PC 출하량이 지난해 대비 17~2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PC 가격 경쟁 거세질 듯
델의 경쟁사인 HP도 PC 시장 침체를 예상하고 있다. 이 회사의 2022회계연도 4분기(지난 7~10월) 매출(148억달러)은 전년 동기 대비 11% 줄었다.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PC 부문 매출은 25% 급감했다. HP는 전년 동기 대비 PC 출하량이 2023회계연도 1분기(11월~내년 1월)에 5~6%, 내년 전반적으로는 1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HP는 향후 3년간 최대 6000명의 직원을 감축하기로 했다. 전체 인력(5만1000명)의 12%에 이르는 규모다.


HP는 시장 점유율 악화에도 직면했다. 업계 2위인 HP의 3분기 세계 PC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0.9%에서 올해 18.7%로 2.2%포인트(p) 줄었다. 3위인 델(17.7%)과 1%p 차이에 불과하다. 과 그 사이 1위인 레노버는 시장 점유율을 23.9%에서 25.2%로 1.3%p 늘렸다. 엔리케 로레스 HP 최고경영자(CEO)는 “유럽·중동·아프리카 시장에서 PC 업계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쳤지만 HP는 그러지 않았다”며 “하지만 시장 내 위상을 지키려면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 인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가전기기 소매업체인 베스트바이의 코리 배리 CEO는 “가전제품의 평균 소매가가 1년 전보다 떨어졌다”며 “팬데믹 특수로 사라졌던 판촉 활동이 부활하면서 이 가격은 계속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켓워치는 “올 연말과 내년 분위기를 고무적으로 보는 PC 업체는 없다”며 “침체기의 승자는 PC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이들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