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과도한 긴축으로 경기가 꼬꾸라질 위험성이 있는 데다 너무 빨리 금리를 올리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다음달 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폭이 50bp(1bp=0.01%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캐나다, 호주 등에 이어 미국까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 긴축 완화론이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속도조절 시사한 Fed

美, 내달 금리 0.5%P만 올릴 듯…캐나다·호주도 속도 늦춘다
Fed는 23일(현지시간) 공개한 11월 FOMC 의사록에서 “대다수(a substantial majority) 회의 참석자가 곧(soon)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이 11월 FOMC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 회의나 그다음 회의에서 금리 속도 조절을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대다수’와 ‘곧’은 각각 FOMC 위원의 과반수와 다음 FOMC 회의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Fed가 5회 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선택하지 않고 다음달엔 금리 인상폭을 50bp로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뉴욕증시가 FOMC 의사록이 나온 오후 2시 이후 반등한 이유다.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FOMC 위원은 “통화정책이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에 접근했으며 그동안 누적된 긴축정책의 효과가 경제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일부 위원은 “지금과 같은 공격적인 속도로 계속 금리를 올리면 금융 시스템에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도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 가능성도 언급됐다. 의사록은 “Fed 이코노미스트들이 미국 경제가 내년 어느 시점에 침체에 빠지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Fed가 내년 경기 침체 확률을 50% 정도로 본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몇몇 위원이 “물가 목표(연 2%)를 달성하기 위해 기준금리의 최종 수준은 과거 전망보다 다소 높아질 것”이라고 해 최종 금리는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9월 점도표(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점으로 표시한 도표)에서 내년 말 금리 예상치가 연 4.6%였는데, 12월 점도표에선 연 5% 안팎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르웨이·캐나다·호주도 숨고르기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긴축 속도를 늦추고 있다. 경기 위축 및 대출 이자 급증 같은 금리 인상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노르웨이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올 6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 기준금리를 50bp씩 올렸다. 그러다 이달 3일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연 2.50%로 0.25%포인트만 인상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단기간 내 큰 폭으로 인상해 경제가 긴축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올 들어 선진국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100bp 올린 캐나다도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6월 물가상승률이 8.1%로 급등하자 한 달 뒤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연 2.5%로 인상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진정되자 금리 인상 폭을 9월에 75bp로 줄인 뒤 10월에 50bp로 완화했다.

호주도 빅스텝에서 베이비스텝으로 보폭을 줄였다. 호주 중앙은행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6월부터 9월까지 4회 연속 기준금리를 50bp씩 인상했다. 그러다 10월과 11월엔 기준금리를 25bp씩만 올렸다. 변동금리 대출 비율이 높아 가계 대출이자 부담이 급증한 영향을 고려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앙은행이 너무 빠른 속도로 긴축을 하면 집값이 더 빨리 하락하고 경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