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일생으로 목숨 건진 외국인 체험담도

이태원 참사로 귀한 목숨을 잃은 154명 중에는 한국이 좋아서 찾아온 외국인 희생자 26명도 포함돼 있다.

외신들은 이역만리에서 황망하게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외국인 부모들의 애타는 사연을 전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스티브 블레시씨는 29일(현지시간) 아내와 쇼핑을 하다 한국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남 스티븐(20)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서울에 간 터여서 그가 혹여나 이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스티븐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문자를 보낸 결과 아들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그날 밤 이태원에 간 것을 알게 됐다.

노심초사 애를 태우던 그는 트위터에 아들의 사진과 함께 이 상황을 잘 아는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제 아들이 서울 압사 사고가 난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들과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한 소식을 알고 계신 분은 공유해주세요.

"
[이태원 참사] "우리 애 어떻게 됐나요" 해외 부모들의 안타까운 사연들
초기 보도에서 희생자 중 미국인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소식에 잠시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의 애타는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3시간 뒤 블레시씨는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아들이 사망자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는 NYT와 인터뷰에서 "한 번에 수억 번을 찔린 것 같았다"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아들은 동아시아에서 무역업에 종사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유학하려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기다렸다 두달 전에야 한양대에서 가을학기를 보내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블레시씨는 WP에 "생전 아들은 외향적이었고 모험심이 넘쳤다"라며 "한국행은 우리 아들이 맞이한 첫번째 큰 모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스티븐 블레시 외에 이번 사고로 숨진 미국인은 켄터키대 재학생 앤 기스케씨다.

켄터키대는 이날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간호대 학생인 기스케씨가 이태원 참사로 숨졌다고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딸의 죽음에 완전히 무너졌고 비통에 잠겨 있다.

딸은 무척 밝고 사랑받는 아이였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희생자 중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온 23세 여성 그레이스 래치드도 있었다.

호주의 영화사에서 일했던 그녀는 친구 2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그의 친구로, 역시 시드니 출신인 네이선 타베르니티씨는 호주 언론 WA 투데이에 당시 처참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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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베르니티씨는 당시 일행이 골목에 서 있다가 천천히 조여오는 인파의 압박에 거의 질식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넘어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선 자세로 숨이 막혔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래치드와 함께 있었는데 그녀가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겨우 기어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래치드가 일했던 호주 일렉트릭라임 필름 관계자는 "그녀는 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이었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라며 추모했다.

타베르니티씨는 "내 친구는 술 취한 사람들에 의해 죽은 게 아니었다.

핼러윈 축제의 계획 부재와 경찰과 소방 등의 관리 부실 때문에 죽은 것"이라며 "아무도 우리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고 지탄했다.

일본인 희생자 도미카와 메이씨(26)의 부모는 뉴스를 통해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서울에서 유학 중인 딸이 걱정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겨우 전화를 받은 것은 뜻하지 않게 한국 경찰이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한국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딸의 스마트폰이 수거됐다고 전했다고 한다.

부부는 딸이 무사하길 간절히 빌었지만 얼마 뒤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딸이 사망자 명단에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태원 참사] "우리 애 어떻게 됐나요" 해외 부모들의 안타까운 사연들
이번 참사로 희생된 26명의 외국인 중에는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스리랑카, 중국 등지 출신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외신을 통해 아직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외국인들의 체험담도 쏟아졌다.

멕시코에서 온 의대생 줄리아나 벨란디아 산타엘라(23)씨는 WP와 인터뷰에서 당시 공포스러운 상황을 전했다.

그녀도 당시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점점 주변 사람들의 압력이 강해졌고 급기야 그녀의 몸이 떠버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수준까지 됐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꽉 낀 채 숨쉬기가 어려워졌고, 다른 사람들이 도와달라 소리치다 쓰러지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젠 다음엔 나 차례다'라고 생각한 순간 인근에 있던 남성이 자신을 인파에서 끄집어냈다고 산타엘라씨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