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낵이 25일 제57대 영국 총리로 정식 취임하며 “전임 정부의 실수를 즉각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경제통’ 수낵 총리의 취임에 영국 금융시장은 국채 금리 하락 등 안정세로 화답했다. 그는 최근 경제 사령탑에 오른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을 당분간 계속 기용하며 영국 경제 되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 달여 만에 바뀐 英 총리

英금융시장 '수낵 효과'…국채금리 급속 안정
전날 단독 출마해 영국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수낵은 이날 오전 11시께 런던 버킹엄궁에서 찰스 3세 국왕을 알현했다. 그는 지난달 8일 왕좌에 오른 찰스 3세가 취임을 승인한 첫 총리가 됐다.

수낵은 신임 총리로서 국왕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국왕과 악수했다. 이른바 ‘키싱 핸즈’라는 전통적 인사법이다. 이후 찰스 3세가 수낵 총리에게 새 내각 구성을 요청하고 취임을 승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찰스 3세는 수낵 총리를 만나기 전에는 리즈 트러스 총리의 사직을 수리했다.

트러스는 이날 오전 9시 마지막 내각 회의를 한 뒤 총리실 밖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그는 취임 50일 만에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로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달 23일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감세안을 발표해 영국 국채 금리 급등, 파운드화 급락 등 금융시장에 충격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책에 대한 사과 없이 “감세를 통한 성장이 옳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달 6일 그의 취임을 승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와 트러스 총리의 퇴임으로 영국의 국왕과 총리가 50일 만에 모두 바뀌는 상황이 됐다.

국왕 접견 이후 수낵 총리는 총리실 앞에서 취임 연설을 통해 대대적인 정책 노선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성장률을 제고시키려고 내놨던 전임 트러스 내각의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몇 가지 실수가 저질러진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쁜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실수는 실수”라며 “전임 정부의 잘못과 실수를 고치고 바로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세안은 완전 폐기할 듯

수낵의 당선이 확정된 24일 시장은 안도감을 나타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서는 영국중앙은행(BOE)이 연 2.25%인 기준금리를 올해 말까지 연 5% 미만으로 올리는 데 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졌다. 트러스가 내각을 이끈 지난주까지만 해도 영국 기준금리가 연 6%대까지 치솟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하향 조정된 것이다.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회사를 거쳐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통’ 수낵이 안정적으로 경제정책을 조정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수낵은 트러스 정부의 붕괴를 초래한 ‘감세 의제’와는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400억파운드(약 64조원)에 달하는 영국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일각에선 그가 국방예산 감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회사 MUFG의 리서치헤드인 데릭 할페니는 “수낵이 영국 국정에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며 “그의 당선으로 영국의 정치적 불안이 해소된 것은 확실히 긍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영국 국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 마감하며 안정세를 되찾았다. 영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31%포인트 하락한 연 3.74%를 기록했다. 30년 만기 국채도 0.312%포인트 떨어진 연 3.749%로 장을 마감했다. 트러스 내각이 450억파운드 감세안 등 ‘미니 예산’을 발표해 시장에 혼란을 불러오기 직전인 지난달 22일 이후 최저치다.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 4.247%를 기록해 2008년 6월 이후 최고치를 찍은 것과 대비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