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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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친러시아 국가 간 에너지 패권 전쟁이 세계 경제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두고 대립한 양측은 원유 생산량을 놓고 다시 맞붙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지난 5일 하루 원유 생산량 200만 배럴 감산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 편에 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켜 물가를 잡고, 러시아의 전쟁 비용 충당을 막으려는 미국 요청을 사우디가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푸틴이 마침내 진정한 친구(사우디)를 찾았다”고 논평했다. OPEC의 맹주인 사우디가 코로나19 사태 초기 후 가장 많은 감산을 결정한 것은 ‘전통 우방’ 미국 대신 러시아 손을 들어줬다는 얘기다.

감산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주요 유럽연합(EU)이 도입할 러시아산 유가상한제 등 대러 제재가 무력화할 수 있다. 미국이 “근시안적 결정”이라며 전략비축유 방출과 베네수엘라 규제 완화 검토 등 즉각 대응에 나선 이유다. 앞서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했지만, 중국 인도 등은 오히려 수입을 늘리면서 러시아를 지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글로벌 경기 침체 위기 상황에서 ‘에너지 정치(energy politics)’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에너지 패권 경쟁이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자극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에너지 맹주 '합종연횡' 美 요청 뿌리친 사우디
OPEC+의 감산 결정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아졌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은 “경기침체로 인한 유가 하락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높은 국제 유가는 물가를 끌어올리고 경기 침체까지 불러올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18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살인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난 7월 원유 증산을 요청하기 위해 인권 문제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사우디를 전격 방문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이번에 감산이라는 ‘뒤통수’까지 맞았다.

뉴욕타임스는 “OPEC+의 결정이 시사하는 바는 미국이 사우디 등 동맹국들에 단지 왕권을 보호해주겠다는 약속과 그간의 관계만으로 호의를 요구할 수 있던 날들이 지나갔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