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 장악을 노리는 미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인 마이크론이 최대 1000억달러(약 142조원)를 투자해 미국 뉴욕주에 대형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달 미국에서 공표된 ‘반도체·과학법’이 마이크론의 전격 투자를 이끌어냈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미국 뉴욕주 북부 지역인 클레이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향후 20년간 최대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이날 발표했다.2024년 착공해 2025년 반도체 양산이 목표다. 그간 미국에 연구개발(R&D) 인력을 두고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던 사업 방식을 바꿔 미국에서도 주요 생산 거점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마이크론은 이번 신공장 건설로 자사 일자리 9000개와 협력사, 공급업체 등의 일자리 4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마이크론의 투자 결정에는 지난 8월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과학법’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 법안엔 반도체 생산 지원에 520억달러(약 73조7000억원) 규모 보조금을 배정하고 미국에서 공장을 짓는 반도체 기업에 25%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겼다. 뉴욕주 정부도 이번 공장 건설에 55억달러(약 7조8000억원) 규모 지원금을 배정하기로 했다. 연방정부의 지원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과학법이 없었다면 이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법안, 세제 혜택, 주정부와의 협력 등은 아시아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데에 핵심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도 마이크론의 과감한 투자를 반겼다. 뉴욕이 지역구인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과학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론 CEO에게 50번은 전화를 했을 것”이라며 “이번 투자는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제품 분야에서 선두를 되찾게 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뉴욕주 북부뿐 아니라 미국에도 혁신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성명문을 통해 “이날은 미국의 또 다른 승리”라며 “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함께 경제를 건설하면서 비용을 낮추는 일을 여기 미국에서 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자국 내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다. 투자 규모는 200억달러다. 인텔은 당초 지난 7월 착공식을 열려 했지만 반도체·과학법 통과 일정에 맞춰 지난달로 착공식을 늦췄다. 퀄컴도 향후 5년간 미국 내 반도체 생산량을 약 50% 늘릴 계획이다.

애플도 미국 내 생산 비중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 180여곳 중 미국에 공장을 둔 기업의 수는 2020년 25개에서 지난해 48개로 1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 기업의 60% 이상이 애플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에 공장을 둔 것으로 드러났다. WSJ는 “공급업체들의 캘리포니아주 이전은 공급망 전환 국면의 일부”라며 “애플은 협력사 몇 곳에 중국 외 지역에서 생산을 늘릴 것을 권고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