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병합한 남부 헤르손주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북동부 지역을 발 빠르게 수복한 데 이어 교착된 남부 전선을 돌파하며 러시아군을 옥죄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해병 제35여단이 헤르손주 다비디우브리드의 통신탑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게양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다비디우브리드는 헤르손주 주도 헤르손시의 북동쪽에 있는 곳으로 헤르손주의 요충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 군이) 남부에서 빠르고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주에만 마을 수십 곳을 해방했다”고 말했다. 예브헤니 예닌 우크라이나 내무차관도 “헤르손의 마을 50곳에서 주민 3천500명이 자유를 되찾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추세로는 겨울이 오기 전에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주를 수복할 전망이다.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48시간 동안 헤르손주를 관통하는 드니프로강 서안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 고위 관료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진격 속도라면 우크라이나군이 11월 중순에 헤르손을 해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들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점령한 동북부 일대를 수복하며 전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북부 하르키우주에 이어 동부 병참지인 리만을 수복했다. 남부 헤르손에서는 러시아군 보급선 차단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빠르게 진격하며 느슨해진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뚫고 헤르손주 도시 다수를 확보하는 전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크림반도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은 지정학적 핵심 요충지로 꼽혀 왔다.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름반도의 상수원이자 전력 공급원이라서다. 러시아 입장에선 헤르손을 빼앗기면 크름반도까지 잃을 위기에 몰린다. 때문에 러시아군은 전쟁 초기 크름반도에서 물량 공세를 펼치며 헤르손주를 장악했다.

이번 전투로 우크라이나군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공격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은 3년간 얼어붙은 적이 없다. 드니프로강 일대에 진흙이 얼지 않으면 진격 속도가 느려져 러시아군이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황이 불리해진 러시아가 핵 공격을 시도할 거란 우려도 증폭됐다. 이를 대비해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에 대피소를 설치하고 있다. 이날 키이우 시의회는 핵 공격 시 인체의 방사선 흡수 방지에 도움이 되는 요오드화칼륨 알약도 대피소에 구비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4개 지역 합병을 강행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킬 것”이라며 핵 위협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조치는 푸틴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3일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 국방부의 핵 장비 전담 부서의 열차가 우크라이나 전방을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지난 주말 사이 러시아 중부 지역에서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