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 연기금이 주요 전략으로 활용해온 ‘부채연계투자(LDI·liability driven investment)’가 금융 불안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LDI는 부채에 레버리지 투자를 할 수 있는 파생상품의 일종인데, 요즘처럼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 손실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LDI 투자 비중이 큰 영미 연기금 중 일부가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여파로 채무불이행(디폴트)에까지 이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파생상품 LDI에 물린 英·美 연기금 '디폴트 공포'…금융시장 뇌관 되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10여 년 동안 영미 연기금 사이에서 투자전략으로 각광받아온 LDI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라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미 연기금 운용사들은 연기금 고갈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파생상품 등 고위험 투자를 늘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LDI다. 영국 연기금은 LDI를 통해 3~4파운드를 투입하면서 10파운드어치 국채 투자를 하는 것과 같은 레버리지 효과를 누렸다.

지난해 말 영국 연기금의 LDI 투자 규모는 총 1조6000억파운드(약 2548조원)로 10년 전(2011년 4000억파운드)의 4배로 급증했다. 2019년 영국 연기금 중 45%가 LDI 투자를 늘렸고, 일부는 7배 레버리지까지 쓰기도 했다.

LDI발 공포는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WSJ는 총 1조8000억달러(약 2576조원) 규모의 미국 기업연금 중 일부가 LDI 투자에 따른 마진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 기업연금 등의 LDI 노출액은 아직 공식 집계되지 않았지만 영국보다는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영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기 전만 해도 LDI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23일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금리 급등)한 결과 영국 연기금들은 10억파운드(약 1조6000억원) 규모의 마진콜을 받았다. 증거금 역할을 한 영국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서 추가 증거금이 필요해져서다. 또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기조로 국채 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미국 기업연금들은 올 들어서만 추가 증거금으로 수천만달러를 납입했다고 보험자문회사 윌리스왓슨타워스가 분석했다.

LDI 투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됐다. 이 때문에 LDI 투자 전문 운용 인력들도 국채 금리 급등을 처음 겪는 상황이어서 대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LDI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부도 사태 같은 파장을 몰고올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보험중개사 에이온의 칼럼 스콧 파트너는 “연기금이 마진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내던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