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합병투표를 시행한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에 편입하는 합병 서명식을 연다. 서방은 ‘투표 조작’에 기반한 러시아의 강제 합병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재차 못박았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도 예고했다. 가스관 누출 사고 해역에서 러시아 해군함이 관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배후를 둘러싼 진실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푸틴, 직접 연설”

29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새로운 영토를 러시아로 합병하는 서명식이 30일 오후 3시에 열린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주 등 러시아가 합병투표를 시행한 점령지 네 곳 모두가 합의서에 서명할 예정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서명 이후 푸틴 대통령이 직접 연설을 하고 네 지역의 행정관들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의회에도 합병 서명식 초청장이 공식 배포됐다.

추가제재 압박에도…푸틴, 우크라 점령지 30일 합병서명
앞서 이들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3~27일 주민투표 결과 우크라이나 주민이 러시아 편입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 찬성률은 87~99%에 달했다.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세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비롯해 자포리자와 헤르손주 행정부 수장들은 현재 모스크바에 집결한 상태다.

이번 조약이 체결되면 이후 상·하원 비준 동의, 대통령 최종 서명 등의 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역시 빠르게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을 때도 주민투표 이후 대통령 최종 서명까지 모든 과정이 6일 만에 마무리됐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강제 병합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총으로 위협받은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주민투표는 무력으로 영토를 빼앗는 불법적인 시도”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과 동맹국은 영토 합병을 지원하는 러시아 안팎의 개인과 단체에 추가 경제 제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U도 러시아의 강제 합병에 대응한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유가 상한선을 넘는 거래에 대해선 해상 수송 관련 보험 서비스 등을 제공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 밖에 러시아산 철강제품, 종이, 보석 등으로 수입 금지 대상을 확장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가스관 누출 4곳 확대

미국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나섰다. 미 국방부는 이날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18대를 포함한 11억달러(약 1조5800억원) 규모의 군사 원조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미국이 사용하지 않는 군수품 재고를 지원했지만 이번부터 새로 제조된 무기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6~27일 발트해에서 발생한 가스관 누출 사고와 관련해선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서방은 에너지 무기화를 일삼는 러시아를 폭발 배후로 지목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일축했다. 가스관 인근국인 덴마크 측은 “가스관 내 압력과 가스 누출량을 감안해 최대 2주 후에야 제대로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스관 누출 지점은 총 네 개로 늘었다. 2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스웨덴 해안경비대는 “기존에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에서 확인됐던 세 곳의 누출 지점 외에 추가로 한 곳이 더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사고 당일 러시아 해군 함선이 인근 해역에서 목격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28일 CNN은 서방 정보 당국자들을 인용해 “26~27일 유럽 보안 관리들은 러시아 해군의 군수 지원함들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누출 해역 근처에 있는 것을 관찰했다”고 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번 가스 누출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30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허세민/노유정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