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영국 금융위기 터질 뻔…그런데 월가가 좋아한 이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뭔가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28일(현지시간) 영국 문제가 금융위기로 번질 뻔했습니다. 영국은행은 급하게 다시 양적 완화(QE)에 나서 일단 불을 껐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미국 금융시장에선 주가가 오르고 채권 금리가 급락(채권 가격 상승)했습니다. 먼저 영국은행 개입으로 불이 (잠시) 꺼진 게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미 중앙은행(Fed)이 혹시 영국처럼 조기 완화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 것도 상승세를 부추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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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새 정부가 지난주 감세안을 발표한 뒤 영국 금융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오늘 국제통화기금(IMF)이 영국 상황을 자세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게 다시 투자자 불안을 촉발했는데요. IMF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 목표가 불확실한 대규모 재정 부양 패키지를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또 무디스는 "자금 마련 계획이 없는 대규모 감세는 차입 비용 증가, 성장 전망 약화 등을 불러 구조적으로 더 많은 적자를 초래하고 부채 상환 능력을 영구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무디스는 영국의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낮추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의 30년물 국채 금리는 40bp 이상 올라 연 5%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따지면 100bp 이상 뛰었습니다. 파운드화는 다시 1파운드당 1.06달러 수준까지 하락했습니다. 도이치뱅크는 "IMF의 질책은 매우 신랄하고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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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을 불렀습니다. 유로화는 0.95유로까지 떨어졌습니다. 영국 요인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극우 정권의 등장,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의 폭발로 인한 에너지 위기 심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의 영토 합병을 선언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러시아는 합병된 영토를 공격하면 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오안다의 크레이그 얼럼 전략가는 "9월 들어 유로화는 달러 대비 5%가량 떨어졌고 오늘은 2002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인 0.9536달러까지 급락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고조되고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이 고의로 파괴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어 유로화 전망에 대해 낙관하기 어렵다"라고 밝혔습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의 금리도 덩달아 급등했습니다.

이에 미국의 국채 10년물 금리가 아침 연 4%를 넘었습니다. 2008년 10월 이후 처음입니다. 달러 강세도 지속하면서 ICE 달러인덱스는 114 중반에서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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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이 급격히 흔들리자 영국은행은 갑자기 긴급 국채 매입(650억 파운드)이라는 깜짝 카드를 꺼냈습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당장 오늘부터 10월 14일까지 장기 국채를 필요한 만큼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지난주 양적 긴축(QT) 방안을 내놓았던 데서 180도 전환을 한 것이지요. 다음 주 시작할 예정이었던 QT는 10월 31일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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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언론은 장기 금리 폭등에 영국의 연기금, 보험사 등이 대규모 마진콜(margin call)에 직면한 게 영국은행이 QE에 나선 배경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확정급여형 연금을 지급하는 연기금 등이 LDI(부채연계투자) 방식으로 파생상품을 통해 헤징을 했는데, 금리 폭등(채권 가치 하락)으로 보유 채권의 담보가치가 낮아지자 추가 담보를 내놓아야 상황에 몰린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의 연금컨설팅사인 XPS를 인용해 지난주 금요일 영국 정부가 감세안을 발표한 뒤 연기금들이 최소 10억 파운드(1조5000억 원) 규모의 마진콜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XPS가 조언하는 400개의 연기금 중 약 3분의 2가 마진콜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죠. 이들이 추가 담보 마련을 위한 보유자산(채권) 매각하면서 채권 금리는 더 뛰었습니다. 즉 채권 매각→금리 추가 상승(채권 가격 하락)→추가 마진콜→추가 매각 등 악순환이 생겼고 이에 영국은행이 급히 뛰어들었다는 것이죠. 이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영국의 투자자인 에드 콘웨이는 "영국은행 개입이 없었다면 오늘 오후부터 연기금 부도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투자협회(Investment Association)에 따르면 2020년 LDI 투자 규모는 1조5000억 파운드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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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행 발표에 영국 국채 금리는 폭락했습니다. 30년물 채권 수익률은 다시 106bp 떨어져 3.93%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파운드화는 발표 직후 더 내리기도 했지만, 위기 가능성이 감소한 덕분에 1.3% 오른 1.088달러 선으로 회복됐습니다. 런던 증시의 FTSE 100지수도 0.3% 상승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ING는 영국은행 조치를 '초기 금융위기에 대한 잠재적 출구'를 제공한 "극적 유턴"이라고 불렀습니다. ING는 "영국은행이 국채 매입을 늘리는 것은 국채시장 불안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여전히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에 달하며 더 많은 국채 매입이 필요할 수 있다. 예정된 10월 31일 QT가 시작되면 두려움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를 것이다. 채권 매입은 발표된 2주보다 더 오래 지속하여야 하고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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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행의 발표는 미국 동부시간 오전 6시 10분께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미국 증시가 개장하던 오전 9시 30분께 시장은 안정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 채권 시장에서는 금리가 큰 폭 하락했습니다. 10년물 금리는 오후 4시 20분께 21.7bp 하락한 3.731%에 거래됐습니다. 2009년 이후 하루 최대 낙폭입니다. 오늘 최고는 4.01%였고 최저는 3.701%로 하루 새 30bp 이상 움직였습니다. 한때 4.316%까지 치솟았던 2년물 금리도 15.6bp 내린 4.131%를 기록했습니다. 오후 1시에 발표된 미 재무부의 7년물 입찰(320억 달러)도 발행금리가 3.898%로 발행 당시의 시장금리(3.903%)보다 0.5bp 낮게 형성됐습니다. 비싸게 팔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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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하락하자 주요 지수는 소폭 상승세(0~0.2%)로 출발했습니다. 금리 하락 폭이 커지면서 주가도 상승 폭을 확대했습니다. 결국, 다우는 1.88%, S&P500 지수는 1.97% 올랐고 나스닥은 2.05% 급등했습니다. S&P500 종목 중 485개가 오를 정도로 랠리는 광범위했습니다. S&P500 11개 업종이 모두 올랐으며 수요 부진으로 아이폰14 증산 계획을 철회했다는 블룸버그 보도에 한때 3% 넘게 내리던 애플도 하락 폭을 대폭 줄이며 1.27% 내림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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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자산 선호 현상 속에 달러화도 하락했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1.2% 내린 112.7로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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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일시적) 시장 안정에 미국 투자자들이 이렇게 환호한 것은 왜일까요? 최근 글로벌 시장의 위기 가능성을 부를 만큼 시장 움직임이 극단적이었던 만큼 단기 과매도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영국은행의 움직임을 본 투자자들이 덜 매파적 Fed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찰스 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전략가는 "시장 변동성과 관련된 Fed 풋(Fed의 시장 지원) 은 죽었을 수 있지만, 금융시장의 시스템적 불안과 관련된 것은 다른 얘기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시스템적 위기가 생기면 지금은 매우 매파적인 Fed가 완화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고문은 "미국 시장의 상승은 영국은행의 시장 개입을 Fed의 비둘기 전환의 신호로 바라본다는 증거"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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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이런 기대가 최근 조금씩 늘고 있었습니다. 영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이 흔들리면서 금융위기가 생기면 Fed가 예상만큼 그렇게 강하게 금리를 올릴 수 없을 것이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최종금리에 대한 예상은 지난 26일 4.8%까지 치솟았었는데 오늘 아침 4.4%까지 내려왔습니다. 또 11월 기준금리 인상 폭이 75bp일 것이란 예상도 오늘 55%에 그쳐 일주일 전 70%보다 많이 낮아졌습니다. 아메리벳 증권의 그렉 패러넬로 전략가는 "금리가 이렇게 요동치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그 기저에선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면서 "시장은 Fed의 금리 인상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 Fed가 멈추거나 주저할 것이란 뜻은 아니지만, 더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블룸버그는 Fed가 11월 초 기준금리를 마지막으로 50bp 혹은 75bp 올린 뒤 내년 1월 통화정책을 선회해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투기적 베팅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미국 금융시장은 유럽과 연계되어 있고 유럽에서 시스템적 위기가 생긴다면 Fed가 이를 챙기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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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섣부른 희망이라는 지적이 훨씬 많습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은행 총재는 오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고 목표인 2%로 충분히 빠른 속도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라며 "나의 기본 전망은 11월에 75bp를 올리고 12월 50bp를 올린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4.25~4.5%로 만들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전날 "영국 파운드 가치 추락이나 영국은행의 채권 매입 등은 Fed 정책이나 미국 경제에 대한 나의 전망에 아직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은 총재는 오늘 런던에서 세계 시장 변동성이 "금융시장에 추가적 제약을 가할 수 있지만" Fed가 현재 경로를 벗어날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더 지속적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다. 진짜 물가를 억제해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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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퍼 샌들러는 "영국은행의 시장 개입 결정이 미국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국채시장의 유동성이 팬데믹 초기 수준에 가까이 감소하면서 일부 투자자가 Fed도 시장 개입에 나설지 궁금해하지만 "시장 유동성이 적더라도 시장은 여전히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로베르토 펄리 이코노미스트는 "국채시장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Fed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JP모건의 미라 판딧 글로벌 전략가는 'Fed는 언제 금리 인상을 중단할 수 있을까'(When can the Fed stop hiking interest rates?)라는 보고서에서 내년 초 중단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판딧 전략가는 제롬 파월 의장이 "모든 채권 수익률 곡선에서 플러스 실질 금리를 보고 싶다"라고 밝힌 것을 토대로 Fed가 11월 75bp, 12월 50bp, 2월 25bp를 올리고 나면 실질 금리가 플러스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그는 그러나 "기준금리가 소비자물가(CPI) 아래에 있을 때 Fed가 금리 인상을 중단했던 적이 없다"라면서 그 시점에서 나올 2022년 12월 CPI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헤드라인과 근원 CPI가 지금부터 계속 전월 대비 0.1% 상승 수준을 유지해야 내년 2월에 발표될 물가가 기준금리(4.5~4.75%)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는 물가연동국채(TIPS)에 기반한 실질금리는 이미 곡선 전반에 걸쳐 플러스이며, 추가적인 150bp 기준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필요한 수준을 넘고 경기를 침체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판딧 전략가는 "실질 금리의 다양한 척도는 Fed의 금리 인상에 대한 다른 경로를 나타낸다. 이는 정책 오류의 위험을 만들고 불확실성을 계속 일으킨다. 이는 단기적으로 금리와 주가의 변동성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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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행의 개입에도 금융 불안이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금리 인상(긴축)을 하면서 채권 매입(완화)을 하는 통화정책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여전히 긴급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100bp 이상 올릴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인플레이션이 높은 데다 영국 정부는 문제가 된 감세안을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킷 주커스 외환 헤드는 "파운드화의 패리티(달러와 1대1 비율)가 깨질 가능성이 훨씬 더 커졌다"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시장은 영국은행이 오는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약 160bp를 올릴 것을 예상합니다. 도이치뱅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외환 리서치 헤드는 "기준금리를 6% 이상으로 올리는 게 파운드 안정화를 위해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 통화 약세→추가 수입가격 인플레이션→추가 긴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CNBC 주최 딜리버링 알파 서밋에 나와 "기본 사례는 2023년 말 경착륙이다. 정확한 타이밍은 모르겠지만 내년 말까지 침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놀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지난 10년간 중앙은행의 이례적 QE와 제로 금리가 버블을 만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이런 요인들이 강세장을 초래했고, 이제는 단순히 (완화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모두 뒤집고 있다. 10년간 쌓아 올린 완화 정책을 빠르게 되돌리려는 시도는 미국 경제에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 펀드 설립자는 "주식 시장의 바닥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매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같은 행사에서 "시장이 조금 더 하락할 수 있지만 지금 주식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고점보다 저점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바닥이나 고점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완전한 바닥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