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비토권 탓 채택 가능성은 없어…美 "러 영토병합 인정 안할 것"
젤렌스키, 안보리 연설서 "영토훔치기 시도"…러 "평화 가져다줄 것"
美, '러 점령지 투표' 규탄 안보리 결의 추진…"판도라 상자"(종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시행된 주민투표에 대해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에서 규탄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추진키로 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토 병합 시도를 맹렬히 비판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으나, 러시아는 오히려 해당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줄 조치라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은 27일(현지시간)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지난 23일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등 4개 지역에서 닷새간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통해 이들 지역을 정식으로 자국령으로 선언할 예정이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은 이번 투표를 '가짜 투표'로 규정하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이날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차지하거나 병합하려고 시도하는 어떠한 영토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짜 주민투표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가 가짜 주민투표의 결과를 미리 정해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면서 "만약 이러한 투표 결과가 받아들여진다면 닫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준비한 결의안에는 러시아가 실시한 주민투표의 불법성과 절차적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에 병합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과 함께 러시아군에 대한 즉각적인 철군 요구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美, '러 점령지 투표' 규탄 안보리 결의 추진…"판도라 상자"(종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안보리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를 겨냥한 규탄 메시지를 냈다.

"안보리를 정치쇼의 장으로 만들지 말라"는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사의 반대를 뚫고 연설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투표를 "다른 나라의 영토를 훔치려는 시도"라며 러시아의 상임이사국 퇴출과 추가 대러시아 제재를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짜 주민투표가 정상적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은 러시아의 현 대통령과는 대화할 게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비토권을 보유한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제출할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소집된 안보리 긴급회의에서도 러시아의 비토권 행사 탓에 미국이 제출한 규탄 결의안 채택이 무산됐다.

이를 의식한 듯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를 향해 오해의 소지가 없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거부권 행사 시 자동으로 소집되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를 집중 비판하겠다고 미리 경고한 것이다.

서방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정당한 투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네벤쟈 대사는 이번 주민투표가 "돈바스 주민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사로 그들의 땅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규정에 따라 투명하게 치러졌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의 장쥔 대사는 "모든 나라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대립과 정치적 고립, 제재는 오직 막다른 길로 향할 뿐"이라며 서방과 온도차를 보였다.

美, '러 점령지 투표' 규탄 안보리 결의 추진…"판도라 상자"(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