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8차 대러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 동원령과 핵 위협에 맞서 내놓은 대응이다. 러시아산 석유 가격상한제와 첨단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전쟁이 길어지자 서방 중심의 국제사회는 대러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튀르키예 등 그간 러시아에 우호적이던 국가들도 냉랭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EU·G7 ‘러시아 석유가격 상한’
푸틴 폭주에 EU 맞대응 나선다…점점 고립되는 러시아
23일 외신에 따르면 EU 외무장관들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새로운 대러 제재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로이터는 EU 외교관 3명을 인용해 러시아산 석유가격 상한제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민간 기술 수출에 대한 추가 제재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8차 대러 제재안은 다음달 중순 열리는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8차 제재는 앞서 주요 7개국(G7)의 러시아산 석유 가격상한제 시행 합의를 반영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이달 초 G7 재무장관들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통제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러시아가 원유를 통해 얻는 수익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EU가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90%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만큼 파급 효과가 어떨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가격상한제를 실제 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U의 대러 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

블룸버그는 “제재 결정은 만장일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EU 회원국마다 에너지 수급 등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제재가 확정되려면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서방이 새로운 긴급 제재를 발표한 것은 러시아가 전날 전쟁 장기화를 암시하는 군 부분 동원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동원령 발동 하루 만에 1만 명 이상이 입대를 자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BBC 등 외신들은 러시아인이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핀란드,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로 대거 도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달라진 中 “급선무는 휴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강행하는 병합투표도 국제사회의 강한 비난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손에 넣은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남부 자포리아주와 헤르손주 등 4개 지역에서 23일부터 닷새 동안 러시아 편입에 대한 찬반 주민투표를 한다. 4곳 모두에서 찬성 결과가 나오면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15%가 러시아로 넘어간다.

서방 국가들은 결과가 조작될 것이 뻔한 가짜 투표라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법 절차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러시아를 퇴출하자는 ‘개편론’도 나왔다.

친러 행보를 보여온 국가들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23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은 지난 21일 유엔총회 중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의 회담에서 “중국은 수수방관하거나 불에 기름을 붓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급선무는 휴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우크라이나 상황 장기화와 부정적 파급 효과의 심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중국은 여전히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번 중국 외교부의 성명은 푸틴을 거의 지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와 서방의 중재자였던 튀르키예도 이날 성명을 내고 “불법적인 일(병합투표)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 정유회사들은 이달 들어 러시아산 원유와 석탄에 대한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