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하게 규탄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한 뒤 열린 유엔총회에서다. 30분가량 이어진 연설 대부분을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러시아)이 주권국을 지도에서 지우기 위해 이웃 나라(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며 “러시아는 뻔뻔스럽게도 유엔 헌장의 핵심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세워진 유엔에서 7개월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를 콕 집어 비판한 것이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예비군 30만 명을 투입하는 군 동원령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군 동원령을 발동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는 더 많은 군인을 소집하고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 병합하기 위해 가짜 주민투표를 계획하고 있다”며 “세계는 이런 터무니없는 행위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거듭된 핵 위협에 대해선 “세계 핵무기 비확산 체제를 무시하고 유럽에 노골적인 핵 위협을 했다”고 비판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핵 위협을 가했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에는 “아무도 러시아를 위협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검토할 경우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푸틴 대통령을 향해 “절대 그러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없었던 형태로 전쟁의 양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확전이나 최악엔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이 흑해 상공에서 보여주기식 핵폭발을 일으키거나 방사능 확산이 제한적인 전장용 핵탄두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 사람(푸틴 대통령)의 선택으로 시작된 잔혹하고 무의미한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존재할 권리와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존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우크라이나와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사전 녹화된 화상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박탈을 주장했다. 또 △러시아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 설립 △우크라이나 안보 및 영토 보전 등 다섯 가지를 전쟁 종식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러시아에 대한 세계 각국의 비판이 이어지는 사이 러시아 국내는 발칵 뒤집혔다. 러시아 정부의 예비군 동원령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38개 도시에서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러시아 시민 1300명 이상이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반전단체 베스나는 “우리의 아버지와 형제, 남편들이 전쟁이라는 고기 분쇄기에 던져질 것”이라며 “무엇을 위해 죽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 검찰은 시위를 조직하거나 참여할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선 러시아군이 투항하면서 탱크 수십 대를 버리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22일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탱크를 확보해 무기를 보충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