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편입하려는 시도에 국제 밀 가격이 급등했다. 러시아 강경파가 연달아 서방국가와의 전면전을 경고하며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도 난항을 빚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밀 선물(12월물) 가격은 전날보다 7.62% 오른 부셸당 8.9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식량 수출 재개로 인해 안정세를 되찾았던 국제 식량 가격이 요동쳤다.
러시아 야욕에 밀 값 급등…하루새 7%↑ [원자재 포커스]
지난 2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8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전월 대비 1.9% 내린 138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가 곡물수출을 재개해서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엔 역대 최고치인 159까지 치솟았다. FAO는 1996년 이후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 가격 동향을 모니터링해 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등 5개 품목군별로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집계해 발표한다.

미 캘리포니아의 곡물 업체 웨스턴밀링의 조엘 칼린 이코노미스트는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가능성을 제거하며 전쟁의 장기화가 예상된다”며 “전쟁이 길어지면 세계 곡물 무역에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거란 공포에 수요가 단기간에 증대됐다. 이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점령지 네 곳에서 주민투표를 23~27일 시행할 거라고 발표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름반도를 병합한 방식과 비슷하다.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를 비롯해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를 편입할 방침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합치면 약 9000㎢에 달한다. 국토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헝가리나 포르투갈 전체 면적에 맞먹는다. 크름반도를 비롯해 4개 지역이 러시아에 합병되면 미 펜실베이니아주 면적을 빼앗게 되는 셈이다.

러시아가 계획한 대로 4개 주를 병합하게 되면 전쟁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병력을 증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국가와의 긴장감도 고조됐다. 러시아 강경파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안보위 부위원장은 “러시아 영토에 위해를 가한다면 모든 방어력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를 통해 식량난이 가중될 거란 우려가 증폭됐다. 유엔과 터키,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맺은 4자 식량 수출 합의안이 파기될 거란 판단에서다. 우크라이나의 식량 수출이 제한될 경우 세계 수입업체들의 계약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일 “합의안은 ‘사기’에 가깝다”며 “가난한 국가에 식량이 가지 않고 부유한 유럽으로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계약조건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전쟁 외에도 세계 밀 공급량은 더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 내 밀 파종 물량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미국 겨울 밀 파종 면적은 목표치의 21%(18일 기준)에 달한다. 전문가들의 전망치인 24~25%를 밑도는 수치다. 지난 7일간 파종 면적은 10% 증대되며 평균치인 17%에 못 미쳤다. 봄밀의 경우에는 18일 기준으로 수확량이 전체 파종량의 94%에 달했다.

세계 식량창고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내년에 밀 생산량이 전년 대비 17.4%가량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곡물협회(Coceral)도 유럽연합(EU)의 올해 밀 수확량 전망치를 이전보다 250만t 감축한 1억 4050만t으로 하향 조정했다. 스페인과 헝가리에서 폭염으로 인해 작황이 나빠질 거란 이유에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