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각국이 올 겨울 에너지 위기에 대비해 천연가스 비축분을 늘린 성과가 나타나면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두 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19일(현지시간)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네덜란드 TTF 선물(10월물)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182.262유로를 기록했다. 전거래일 대비 3% 하락했다. 한국시간 20일 오전 9시30분 기준 이 가격은 175유로까지 떨어진 상태다. 지난 7월 22일(163.548유로) 이후 최저치다.

유럽 각국이 천연가스를 상당량 비축하는 데 성공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18일 기준 EU의 가스 저장량은 저장능력 대비 85.6% 수준이다. 연간 EU 가스 소비량의 20~25%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가스를 비축해놨다. 에너지정보업체인 티메라에너지는 “EU 각국이 에너지 가격을 탄력적으로 바꾸는 등의 정책을 구체화하면서 지난 3주 동안 유럽 에너지 시장의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독일은 저장능력 대비 90% 수준까지 저장고를 채웠다. 다음 달 1일 달성하려던 목표치를 10일 이상 앞서 달성했다. 오는 11월 1일까지 이 저장량을 95%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독일은 가스 구매를 위해 25억유로를 추가 배정했다. 앞서 배정한 15억유로를 거의 다 소진하자 추가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독일은 액화천연가스를 가스 형태로 변환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부유식 저장장치도 증설 중이다.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통한 가스 수입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은 빌헬름스하펜항에서 오는 12월 첫 부유식 저장장치 가동을 시작한 뒤 내년에 추가로 이 장치 5~7대를 가동할 예정이다. 이미 네덜란드가 이달 중 부유식 LNG 터미널을 새로 개장하기로 하면서 유럽의 LNG 화물 수입 능력이 향상된 상황이다.
EU 예상보다 빠른 비축 속도…천연가스 가격 두달 새 최저 [원자재 포커스]
미국 천연가스 가격도 지난달 이어졌던 고공행진이 끝난 분위기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9일 천연가스 10월물 가격은 MMBtu(열량 단위)당 7.7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8월 8일(7.59달러)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코브포인트 LNG 터미널이 유지보수를 이유로 다음달부터 몇주간 폐쇄에 들어간다는 점이 가스 수요가 하락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텍사스주의 프리포터 LNG 터미널이 정전으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LNG 수요가 줄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재현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들 시설이 가동을 중단하면 미국 LNG의 해외 공급량이 줄면서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

미국에선 천연가스 가격이 기술적 약세에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BW애널리틱스그룹의 엘리 루빈 수석 애널리스트는 “7.50달러선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유지가 안되면 상당한 추가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오대호 주변과 북동부가 다음달 초까지는 별 추위 없이 온화한 기상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천연가스 가격에 하락 압박을 주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단정을 짓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루빈 애널리스트는 “지난주 가격 변동세를 보면 천연가스 가격은 새로운 강세 이벤트가 나타났을 때 다시 급등할 수 있을 정도로 취약한 상태”라며 언제든 천연가스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도 “지난주 미국에서 철도 파업이 무산된 뒤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졌지만 미국의 가스 재고량은 계절 평균 이하로 떨어졌다”며 “올 겨울 미국 시장과 국제 시장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