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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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강달러의 역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 6일 20년 만에 110을 돌파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올 들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등 고강도 통화긴축 정책을 이어가면서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신흥국·美 기업 ‘타격’
거침없는 强달러 행진…예상치 못한 '역풍' 우려된다
반대로 다른 국가들의 통화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한때 세계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이달 초 37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유로화 가치도 지난 5일 달러당 0.99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엔화 역시 1998년 8월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강세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신흥국 시장 △기업 이익 △글로벌 경제 △환율 시장 △달러 투자 등 다섯 가지 부문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흥국들은 달러 강세에 취약하다. 채권을 달러로 발행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달러가 강세일수록 신흥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수입 제품 물가가 오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를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이 한층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 달러 가치가 상승할 때만 해도 신흥국들은 자신만만했다. 커피, 대두, 구리 등 신흥국들이 주로 수출하는 원자재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원자재 가격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신흥국 경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국 기업도 강달러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매출이 많은 기업은 해외 각국 매출을 달러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매출이 쪼그라든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 매출이 전체의 50%를 웃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는데 달러 강세가 없었다면 증가율이 16%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커져”
기축통화인 달러의 강세가 원자재 가격을 밀어올릴 수도 있다. 원유 등 중요한 재화는 달러로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원자재 가격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영국 헤지펀드 멜카트 킬 캐피털의 키스 디칼루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강달러는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유럽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Fed를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도 커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세계 34개 중앙은행 중 29개, 즉 85%가 긴축정책 중이며 긴축 정도가 강하고 빠르다”고 서술했다.

가치가 떨어지는 자국 통화를 지키기 위해 각국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할 가능성도 크다. 지난 15일에는 한국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 1400원 선이 위협받자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이날 외환당국 관계자는 “최근 대외 요인으로 원화 변동성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 내 쏠림 가능성 등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동시에 외환시장에서 대규모 달러 매도로 실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각국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은 미국이 동참할 때 효과가 발생하지만 미국 당국이 개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7월 방일 당시 “환율은 드물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투자자들이 달러를 사재기해 시중에서 달러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로 거론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