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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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의 걷잡을 수 없는 추락으로 일본이 이르면 올해 세계 3대 경제대국의 자리마저 내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0년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준 지 10여년 만이다. 임금수준이 한국과 비슷해지고,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탈하는 등 엔저(低)가 일본의 국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달러당 엔화 가치가 140엔 수준을 유지하면 올해 달러 기준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조9000억달러(약 5421조원)로 30년 만에 4조달러를 밑돌게 된다"고 19일 보도했다. 또 "일본 경제규모가 버블(거품)경제 붕괴 직후의 수준으로 되돌아가면서 독일과 거의 같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달러 기준 일본의 명목 GDP(진한색 실선)는 3조9000억달러로 30년 만에 4조달러를 밑돌게 돼 독일(오렌지색 실선)과 거의 같아질 것"이라고 19일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달러 기준 일본의 명목 GDP(진한색 실선)는 3조9000억달러로 30년 만에 4조달러를 밑돌게 돼 독일(오렌지색 실선)과 거의 같아질 것"이라고 19일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일본의 올해 명목 GDP를 553조엔(약 5373조원)으로 예상했다. 달러 당 엔화 가치를 140엔으로 환산하면 3조9000억달러로 1992년 이후 처음 4조달러를 밑돌게 된다.

같은 기간 세계 GDP는 4배 늘었다. 그 결과 1992년 15%에 달했던 세계 GDP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4%를 밑돌게 된다. 2012년 일본 GDP는 6조달러를 넘어 2조달러였던 독일보다 3배 컸다. 엔저로 인해 이 격차가 10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올해 달러 당 엔화 가치는 평균 127엔이지만 6개월새 30엔 하락했다. "엔화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나 내년 일본의 GDP가 4조달러를 밑돌 가능성이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엔저(低)는 일본인의 소득 수준을 30년 전으로 되돌려 구매력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매력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이 140엔이면 일본인의 연간소득은 1990년 수준인 3만달러로 줄어든다. "올해 달러 대비 통화가치 하락률은 엔화가 원화보다 컸기 때문에 한국과의 임금 수준이 비슷해질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2011년만해도 일본의 평균 임금은 한국보다 2배 높았다. 물가 차이를 감안한 구매력 평균 소득은 2018년 한국이 이미 일본을 따라잡았다. 노구치 유키오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는 "통화가치 하락은 국력을 저하시킨다"며 "해외로부터 인재를 유치하기 어렵게 돼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의 충격도 더 크게 받는다. 올해 달러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13% 오른 반면 엔화로 거래되는 도쿄상품거래소의 원유선물 가격은 33% 올랐다.

엔화 가치가 떨어질 때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일본증시에 몰리던 현상도 사라졌다.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를 시작해 엔화 가치가 급락한 2013년 1~8월은 외국인 투자가들은 9조1000억엔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엔저 효과로 일본 기업의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올해 1~8월 외국인 투자가들은 일본 주식을 2조7000억엔 순매도했다. 리처드 케이 컴제스트 애셋매니지먼트 애널리스트는 "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전가하지 못해 이익이 떨어지는 기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투자성과를 평가하는데 사용하는 달러 기준 닛케이225지수는 올해 23%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42%)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해외 투자가들의 관점에서 일본의 자산가치가 급감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가 엔저를 유도하는 정책을 계속한 결과 정보기술(IT) 분야 등에서 투자가 부진했고, 산업별 경쟁력이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고노 류타로 BNP파리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저로 연명하는 기업이 늘면서 전체적인 생산성은 떨어지고 임금은 정체됐다"고 분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