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업공개(IPO) 시장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넘어갔다. IPO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에서 아시아 시장이 미국 시장을 압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플레이션 공포와 거시경제의 변동성 증가로 미국의 IPO 열기가 가라앉은 반면 중국 IPO 시장은 당분간 건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미국 내 IPO 자금조달 규모는 233억달러(약 32조3900억원)로 집계됐다. 전세계 IPO 자금조달 규모의 15%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엔 이 비중이 51%였다. 블룸버그는 “전통적으로 IPO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분주했던 미국의 비중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IPO 자금조달 규모는 2019년 700억달러, 2020년 1812억달러, 지난해 3371억달러로 그간 증가 추세였지만 올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줄어든 미국 시장의 비중은 아시아 시장이 채웠다. 올해 아시아 IPO 시장의 자금조달 규모는 1043억달러(약 145조원)로 나타났다. 전세계 비중의 68%를 차지한다. 전세계 IPO 시장의 자금조달 규모는 지난해 6570억달러(약 913조2000억원)로 정점을 찍었지만 올해엔 1528억달러(약 212조4000억원) 수준으로 급감한 상황이다.

아시아 시장의 강세는 중국에서 IPO가 활발했던 덕분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IPO 자금조달 규모 순위에서 상위 10개 기업 중 6개 기업이 상하이·선전 증시나 홍콩증시에서 상장했다. 질리 궈 UBS그룹 아시아시장 공동대표는 “중국 증시는 해외 변동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대부분 국내 자금으로 운용되는 시장”이라며 “해외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더라도 지속적으로 IPO가 가능한 곳”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에선 상장 철회가 속출했다. 인텔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모빌아이가 지난 7월 IPO를 연기한 데 이어 미국 요거트 업체인 초바니가 지난달 IPO를 철회했다. 중국 기업들의 이탈도 미국 IPO 시장의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홍콩 기업이 올해 뉴욕증시에서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6억3600만달러(약 8840억원)에 불과하다. 뉴욕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에 직면하면서 중국발(發) 미국 IPO 열기가 식었다.

제임스 왕 골드만삭스 주식자본시장(ECM) 공동대표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우려로 규모 면에서 IPO의 진원지가 동쪽으로 이동했다”며 “올 연말 홍콩증시에서 일부 대규모 IPO가 예정돼 있는 만큼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