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 단결' 강조…초대 자치주장 주덕해 묘지 '썰렁'

"조선족 색채가 빠진 조선족자치주 창립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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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도 축가도 중국어 일색…"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축제 씁쓸"
지난 3일 열린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 경축대회를 지켜본 조선족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씁쓸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조선족 고유의 색채 대신 '중화민족'이 강조된 탓이다.

당시 행사장에는 중국어를 먼저 쓰고, 밑에 한글을 사용한 현수막이 내걸렸다.

행사 사회를 본 훙칭 옌볜자치주장은 물론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모두 '유창한' 중국어로 '중화민족 공동체' 건설을 강조했다.

이어진 축하 공연에서는 조선족 노래를 중국어로 번역해 불렀다.

한 조선족은 소셜미디어에 "화려한 한복을 입고 흥겹게 춤을 췄지만, 말과 노래는 중국어 일색이었다"며 "몸에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고, 씁쓸했다"고 적었다.

또 다른 조선족은 "하늘나라에서 축제를 지켜본 주덕해 주장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며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라고 했다.

1952년 9월 3일 창립된 옌볜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을 지낸 주덕해(朱德海·본명 오기섭)의 묘지에는 헌화는 물론 참배객들이 없어 썰렁했다.

그는 옌볜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911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출생, 1920년 중국으로 옮겨가 항일투쟁에 나섰고, 일제가 패망해 물러간 뒤 1946년 헤이룽장성 최초의 조선족 학교인 창즈(尙志)조선족중학교를 세웠다.

1949년에는 옌볜대학교를 개교, 초대 총장을 맡아 조선족 교육 발전에 헌신했다.

1957년 옌볜예술학교를 설립한 것이 화근이 돼 문화대혁명 기간 '지방민족주의 분자'로 낙인찍혀 후베이성 우한으로 피신했다가 1972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며 1978년 명예를 회복해 옌지 시민공원에 안치됐다.

탄생 100주년이었던 2011년 당시 지린성 서기와 옌볜조선족자치주 서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가 열리는 등 추모 행사가 잇따랐고, 그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도 출간되기도 했다.

진행도 축가도 중국어 일색…"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축제 씁쓸"
한 조선족은 "자치주 창립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자치주의 기반을 다진 주덕해 묘지에 화환을 올리는 게 첫 수순이고, 예의"라고 꼬집었다.

앞서 옌볜주는 지난 7월 문자 표기 때 중국어를 우선으로 하는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 실시 세칙'을 시행했다.

이 세칙은 공식 문서는 물론 간판 등에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하도록 하면서 중국어를 우선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옌볜에서는 한글만 표기하거나 병기하더라도 한글을 우선 사용하는 간판들이 많았다.

중국 정부가 2020년부터 중화 민족주의와 국가 통합을 강조하면서 소수민족 자치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조선족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한 조선족은 "우리 민족은 일제 침략기에 항일운동 최선봉에 섰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옌볜은 중국의 35개 자치구·자치주 가운데 3번째로 창립됐다.

신장(1955년), 시짱(티베트·1965년)보다도 앞섰다"며 "그러나 조선족 인구가 감소하는 데다 언어가 통제되면서 옌볜은 점차 조선족 자치주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머지않아 옌볜 자치주 창립 축하 행사가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