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유럽중앙은행(ECB)이 10월부터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에 들어간다. 고공행진하는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핵심관계자들을 인용해 ECB가 5조유로 규모의 채권 매각에 나선다고 전했다. 논의는 10월 5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키프로스에 방문할 때 시작될 예정이다.

소식통들은 이 회담에서는 ECB가 구축한 3조 2600억유로의 주요 채권 포트폴리오에 대한 재투자 금액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2023년 1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대차대조표 축소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대차대조표 축소'로도 불리는 양적긴축은 중앙은행이 매입한 채권의 만기가 다가왔을 때 재투자하지 않거나 보유하던 채권을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을 뜻한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중앙은행들의 주요 긴축 수단으로 쓰인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만기채권의 규모를 늘려왔던 ECB가 채권 매각에 나선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유로존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9.1%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ECB 목표치의 4.5배를 넘는다.

소식통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인플레이션 완화)과 기존 정책 사이 일관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현재의 물가 상승률이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우리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CB는 모기지 대출과 같은 장기 대출로 이익을 올리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장기 금리는 단기 금리보다 높은 게 보통이지만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면 안전자산인 장기채로 몰리게 된다. 통상 전형적인 경기 침체 신호로 해석된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