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강수를 뒀다. ECB는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의지를 다졌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와 수신금리, 한계대출금리 등 세 개 정책금리를 모두 0.75%포인트씩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연 0.5%에서 연 1.25%로 오른다. ECB 기준금리는 10년여 만에 ‘제로금리’에서 벗어나 연 1%대로 올라섰다. 수신금리는 연 0%에서 연 0.75%, 한계대출금리는 연 0.75%에서 연 1.5%로 상승한다. ECB가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 건 1999년 1월 후 처음이다. 1999년 1월 당시 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이유는 유로화 출범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술적 조정 목적이었다. ECB는 지난 7월 회의에서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마감한 데 이어 이번에는 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7월에 이어 두 번 연속해 금리를 올린 ECB는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이 ECB의 목표(약 2%)를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ECB 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는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해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주장했지만 예사롭지 않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매파가 승리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9.1%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는 ECB 목표치의 4.5배 이상이다. ECB는 성명에서 “앞으로 ‘여러 차례’의 회의에서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유로존의 7월 실업률이 6.6%로 사상 최저를 찍으면서 0.75%포인트 금리 인상에 부담이 덜했다는 분석이다.

유로화 가치가 최근 20년 만에 최저치를 찍은 점도 이번 ECB 결정에 일조했다.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수입하는 원자재 등의 실질 가격이 올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ECB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의 원인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7월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는데도 ECB는 물가 상승을 억제하거나 유로화 가치를 방어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ECB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ECB는 유로존의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ECB는 올해 인플레이션을 8.1%, 내년은 5.5%로 봤다. 에너지 가격 급등 등을 반영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9%로 낮췄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ECB의 내년 경제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