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부과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자국 기업들로부터 관세 유지 요청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대중국 관세 인하 논의를 사실상 백지화한 셈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중 정서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美, 대중 고율 관세 유지

중간선거 급한 바이든 "對中 고율관세 유지"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무역법 301조와 관련한 조사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조치로 수혜를 본 자국 기업들이 관세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확인했다”며 “법령에 따라 관세 조치는 종료일에 만료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USTR은 추가적인 법률 검토를 마칠 때까지 대중국 관세 조치를 이어갈 예정이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최대 25%)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다. 교역 상대국이 불공정한 무역 행위를 취했을 때 수정을 요구하고, 상대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보복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2018~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에 기반해 반도체, 화학품, 소비재 등 중국산 수입품 2200여 개(3700억달러)에 고율 관세를 적용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도입된 관세 조치 중 2건은 올 7월과 8월 각각 자동으로 만료될 예정이었다. 미국 법률은 USTR이 관세 수혜자로부터 관세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요청을 받지 않는 이상 관세 부과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나면 관세 조치가 만료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50여 개가 넘는 기업이 USTR에 “대중국 관세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자동 만료를 피하게 됐다. 미국 기업 관계자들은 “(값싼)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고 신기술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며 고율 관세를 지지했다고 USTR은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USTR은 무역법 301조에 따라 관세 유지 여부에 대한 정식 검토로 넘어갈 예정”이라며 “이 과정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中 “정치적 관세 쇼” 반발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에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가 폐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았다. 미국이 40여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만큼 관세 인하를 통해 소비자물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각에서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잃을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나왔지만, 추락하는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 앞에 관세 인하론이 힘을 얻었다. 5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도 “중국산 관세 일부를 철폐하는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후 미·중 갈등이 깊어지면서 이 같은 기류에 변화가 일었다. 중국이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고율 관세를 폐지하면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최근 국제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중국산 관세 인하에 대한 필요성을 낮췄다.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지지 기반인 노동계가 대중국 관세 인하에 반대하고 있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전향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대중국 관세 조치가 연장된 데 대해 즉각 반발했다.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3일 “미국이 대중 관세 문제에 대한 잘못을 단기간 내 바로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미국의 정치화된 관세 쇼는 미국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중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