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액 청구액의 4.6%로 줄었지만 이자까지 3천억원 상당
추경호 경제부총리·김주현 금융위원장 등 의사결정 참여
한덕수 총리, 론스타 법률대리 김앤장 고문…론스타 옹호 발언 논란
"사적 관여·위법 사항 없었고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 해명
[론스타 판정] 인수·매각 관여 관료들 책임론 다시 불거질 듯(종합)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중재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3천억원 상당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정이 31일 나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관련 승인에 관여했던 전·현직 관료들에 대한 책임론도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배상 결정액이 론스타 청구액(46억8천만달러)의 4.6%(2억1천650만달러)에 해당하지만 배상금에 지연이자까지 합산한 금액은 약 3천억원(배상금 2천800억원+지연이자 185억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가 ISD에서 패해 수천억원대 배상금을 지급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법무부는 애초 이날 오전 지연이자를 1천억원 상당이라고 했다가 오후 브리핑에서 185억원이라고 정정했다.

정부는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 판단에 불복해 이의 제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당시 의사 결정에 관여했던 인사들에 대한 일부 책임론 제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11년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협상을 할 때 승인 등을 담당했던 금융위원회 고위직에 대한 책임론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금융위원장은 김석동 법무법인 지평 고문, 부위원장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무처장은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맡고 있었다.

추 경제부총리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했을 당시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으로 매각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론스타는 하나금융에 론스타를 매각할 때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매각 승인을 지연해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해왔다.

김주현 위원장은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론스타 관련 책임론을 제기한 의원 질의에 "책임져야 한다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은행법에 규정된 매각승인 심사 기간(60일)이 권고 사항에 불과하고 서류 보완 기간을 고려하면 기간을 초과한 게 아니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론스타 판정] 인수·매각 관여 관료들 책임론 다시 불거질 듯(종합)
또한 당시 정책결정권자들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 정당하게 연기한 것이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당시 기준으로선 정당한 판단이었으며 직무상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배상 판정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애초 한국 정부가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도록 승인한 게 잘못이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인수가 금지돼 있는데, 금융당국이 예외 승인을 통해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넘긴 게 '잘못 끼운 첫 단추'였다고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특히 현직 고위공직자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 경제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론스타와 관련한 책임론이 집중적으로 거론된 바 있다.

한 총리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했을 당시 론스타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앤장의 고문이었다.

한 총리는 2002년 11월부터 8개월간 김앤장 고문을 지냈다.

한 총리는 2006년 감사원의 론스타 특별감사 때에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총리였고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론스타의 투자가 없었다면 외환은행은 파산상태로 갔을 것"이라며 론스타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한 총리는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론스타 문제에 대해 "국가 정부의 정책 집행자로서 관여한 적이 있지만 제 사적인 직장에서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

김앤장이 론스타 법률대리를 하는지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추 경제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그동안 여러 절차가 진행됐고 대법원에서까지 문제가 다 정리된 부분"이라면서 "당시로 돌아가도 그 시장 상황에 있었으면 저는 아마 그렇게 결정할 것"이라며 당시 판단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론스타와 관련이 있다.

2008년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자인했을 때 금융위 부위원장이었다.

이 총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론스타가 스스로 제출한 서류에 비금융주력자라는 사실이 들어가 있었는데 심사를 유보했다는 국회의원 지적에 대해 "론스타가 보내준 자료가 원자료와 다르고 확인 절차가 계속됐으며 확인되더라도 주식매각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논의가 있어 시간이 갔다"고 해명했다.

론스타 관련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의 불법행위 의혹과 관련해선 감사원 감사와 강도 높은 검찰 수사가 이어졌지만, 법원 판결을 거쳐 이미 무죄로 사법적 결론이 난 상태다.

형사처벌에 필요한 시효도 종료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불법승인 의혹에 대해 "시효가 이미 다 끝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중재판정부의 배상 판정에 책임이 있는 전·현직 금융관료들에게 국가가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직무상 위법행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관료 개인에게 배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의 직무상 위법행위로 인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해당 위법행위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기인한 것일 때만 국가가 해당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등 공무원 개인의 배상 책임을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와 별개로 정치적·도의적 책임 논란까지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