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선물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4년 만에 처음으로 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의 매파적 발언이 겹치며 가격 변동성이 증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금 선물(12월물) 가격은 전장 대비 0.45달러(0.03%) 오른 온스당 1750.15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26일 잭슨홀 회의 직후 1.2% 급락한 데 이어 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다 소폭 상승했다. 28일 금 현물은 온스당 1721.29달러까지 떨어지며 1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은 바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역대 최고치를 찍은 2020년 8월 온스 당 2028달러에 비해 약 16% 떨어졌다. 올해 연중 최고인 3월 온스당 1985달러와 비교해도 12%가량 낮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미국 주식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피난처로 여겨져 가격이 치솟았다. 인플레이션과 불확실성을 헤징하는 수단이라서다.
파월의 강경한 태도에 급락한 '금값'…러시아에선 호황 [원자재 포커스]
하지만 파월 의장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을 시사하자 투자 환경이 달라졌다. 지난 26일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회의 후 제롬 파월 Fed 의장이 “금리를 계속 올린다”는 뜻을 드러낸 게 국제 금 가격에 영향을 끼쳤다. 파월 의장은 이날 8분 50여초간의 발표에서 금리 인상 기조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금속 거래업체 헤레우스의 타이 웡 트레이더는 “금리 인상이 장기화할 경우 주식시장과 금 가격이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대피처인 금 가격은 금리 상승에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높은 금리 수준이 금에 관한 투자 매력을 낮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권과 달리 이자가 붙지 않는 금은 시세 차익만이 유일한 수익 실현 수단이다. 미국의 2년물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중 3.8% 수준까지 치솟으며 2007년 11월 이후 정점을 찍었다. 이날 소폭 하락해 3.4%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10년물 국채 수익률(3.11%)을 웃돌았다. 달러도 강세를 이어가며 금 투자에 따르는 부담을 증대시켰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오안다의 에드 모야 선임 애널리스트는 “국제 금 가격은 잭슨홀 회의에서 파월 의장이 언급한 매파적 성향을 흡수하며 가격 변동성이 커졌다”며 “월가에서는 Fed가 조급하게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지만 금 가격은 이에 따라 반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에선 금 투자가 호황이다. 29일 하루 동안 거래된 금은 지난 2주간 평균 거래량을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들어 금 관련 펀드로 유입된 러시아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15억루블(약 327억원)로 지난달 보다 1.5배 이상 늘었다.

서방국가의 제재 여파로 풀이된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금융기관이 퇴출당하자 유로화 및 달러화 결제가 제한된 탓이다. 대체 수단으로 금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알파캐피탈의 드미트리 스크랴빈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러시아의)비우호 국가 통화로 표시된 예금과 계정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리스크가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루블화로 표시된 금을 사는 게 이해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민들이 금을 외화 예금의 대체재로 여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