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리·거품에도 '반도체 자립'에 계속 총력"
2018년 7월 '중국의 반도체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칭화유니의 베이징 사무실에 당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수장인 샤오야칭 주임(현 공업정보화부장)이 방문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칭화유니가 프랑스 스마트칩 부품 메이커 랑셍을 26억달러에 인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기념사진에는 7명이 등장하는데, 그로부터 4년 후 샤오 주임을 비롯해 자오웨이궈 칭화유니 회장, 댜오스징 공업정보화부 전자정보사장(국장급) 등 3명이 당국의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 10일 중국 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이들 세 명 외에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일명 대기금·빅펀드)와 화신투자관리의 전현직 관리들도 조사 중이다.

2014년 중국 당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조성한 대기금은 지금까지 총 3천430억위안(약 67조원)을 설계, 제조, 시험, 조립 등 반도체 전체 공급 라인 육성에 배정했다.

대기금은 소유·관리 분리 원칙 아래 자금 조성과 중요 전략적 판단은 자금을 조성한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주식회사가, 일상적 투자 관리 업무는 대기금 운영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화신투자관리가 담당하는 구조로 돼 있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는 대기금 조성에 동원된 국유기업 관리를 총괄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당국의 조사는 칭화유니가 맹목적 투자를 받다가 파산구조조정 절차를 거쳐 주인이 바뀐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며 "구체적 혐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가 중국의 국가 주도 반도체 자립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라고 27일 설명했다.

이어 "불행히도 이는 중국 반도체 분야가 야심 찬 기업가들, 영민한 투기꾼과 심지어 사기꾼이 만연한 환경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문제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반도체 육성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을 인용해 전했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MERICS)의 안토니아 흐마이디 분석가는 "칭화유니의 실패는 기업이 어떠한 건전한 결정 없이도 끝없는 투자금의 공급을 기대하며 국가에 의존하는 등 중국 반도체 산업에 만연한 문제들을 조명한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서 자립을 강조한 이후 벤처 캐피털 자금은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으로 몰렸고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와 자동차 회사들은 인하우스 반도체 설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최근 난징에서 열린 회의에서 다양한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력으로 반도체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전적으로 자국 내 조달에 기반한 반도체 산업을 조성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이 가열되는 와중에 자급자족에 속도를 내라는 정치적 요구 속에서 국가 자금이 계속 흘러 들어가는 중국 반도체 분야에서 낭비와 사기, 거품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앤디 장 전 화웨이 클라우드 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중국의 반도체 거품은 엄청나며 많은 신규 스타트업은 손쉽게 수백만 위안을 모을 수 있다"며 "이는 배우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단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획기적인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며 "제로에서 시작해 반도체를 생산하기까지는 최소 6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정보 사이트 치차차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기업공개(IPO)를 제외하고 820개 이상의 반도체 관련 자금 모금 거래가 이뤄져 총 1천억위안(약 19조원)이 모였다.

칭화유니나 사기에 가까운 도덕적 해이로 수십조원이 투입됐지만 생산도 못하고 좌초된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 같은 대형 실패도 있지만, 반도체 지원금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 2위 파운드리 업체인 화훙 반도체 등을 키우는 성과도 냈다.

뷰캐넌잉거솔앤루니의 국제 무역 전문가 댄 피카드는 "제재가 늘어나면서 중국 산업에 외부적 도전이 분명히 있지만 자금 유용 탓에 적절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 대규모 투자에 따른 내부적 도전 역시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 정부는 외부 현실을 고려할 때 미국의 강화되는 제약 노력 속에서 자국 반도체 산업 지원을 강화하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며 "시 주석 역시 2015년 '제자에게 마지막 기술까지 가르치고 나면 스승은 굶주릴 수 있다'며 다른 나라로부터 핵심 기술을 얻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덧붙였다.

컨설팅회사 인트라링크의 스튜어트 랜들은 중국이 여러 부패 스캔들을 고려해 진짜 지원을 받을만한 회사에 집중하며 국가 주도 투자 전략을 좀더 현명하게 구사할 것으로 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