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기차 업계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는 리튬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재료인 리튬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수급난이 심화되자 리튬 가격은 치솟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탄산리튬 가격은 t당 48만위안을 넘기며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튬의 주산지인 남미 국가들이 ‘리튬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전기차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올초 칠레 정부와 체결한 리튬 채굴 계약이 지난 6월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 현지 주민들이 광산 채굴 과정에서 지역 물 공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칠레 대법원은 정부와 주민들 간 사전 합의가 없었다며 계약을 무효화했다.
WSJ는 칠레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가 포함된 이른바 ‘리튬 삼각지대’에서 비슷한 마찰이 계속 빚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튬 삼각지대에는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 이상인 55%가량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칠레는 호주에 이어 세계 리튬 생산량 2위, 매장량 1위 국가다. 아르헨티나도 생산량 기준 4위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좌파 정부들이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광물 생산 통제에 나서면서 전기차 업계의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 정부는 국영 리튬 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08년 좌파 정부 시절 리튬 생산을 국유화한 볼리비아는 국영 기업을 세우고 2013년 공장 가동을 시작했지만 현재 생산량은 미미하다. 지난해 볼리비아의 연간 탄산리튬 생산량은 칠레의 하루 반 생산량 수준에 그쳤다. 아르헨티나만 최근 외환위기를 겪으며 리튬 생산에 적극적인 상태다.
리튬 보호주의는 다른 배터리 원자재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8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연내 니켈 수출 관세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매장량과 생산량 모두 세계 1위다.
지난달 23일 폭스바겐그룹 이사회(감독위원회)는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노조와의 갈등 등으로 2025년까지 임기를 3년 남긴 상황에서 이뤄진 사실상의 해임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사업을 바꾸는 상황에서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도하던 수장의 퇴진은 갑작스러웠다.디스의 후임으로 폭스바겐 이사회가 선택한 인물은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CEO다. 그는 폭스바겐그룹의 럭셔리·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를 7년간 이끌어왔다. 지난해 포르쉐는 전 세계에 30만1915대의 차량을 인도해 사상 최대 기록을 썼다.블루메는 다음달 1일 폭스바겐 CEO이자 폭스바겐그룹 회장으로 취임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공략부터 포르쉐 기업공개(IPO)까지 그룹에는 해결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소통 중요시하는 리더십외신들은 블루메를 ‘카 가이(Car Guy)’라고 부른다. 그는 정통 ‘아우디·폭스바겐 맨’이다. 1968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태어나 브라운슈바이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브라운슈바이크는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와 가까워 폭스바겐 직원이 많이 산다. 블루메는 대학 졸업 후 1994년 아우디의 우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신입사원으로 채용됐다. 차체 설계 및 도장(페인트) 업무로 시작해 아우디 A3 생산 책임, 포르쉐 생산 및 물류 담당 등을 거쳐 2015년 포르쉐 CEO로 발탁됐다.블루메 취임 3년째인 2018년 말 포르쉐는 첫 순수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을 세상에 내놨다. 1억원을 넘는 고가에도 사전 주문 단계부터 전 세계 수요가 폭발했다. 연간 생산 목표를 2만 대에서 4만 대로 늘리고, 아우디에서 직원 수백 명을 빌려와야 할 정도였다. 지난해 타이칸 판매량은 4만1296대로 정통 스포츠카이자 포르쉐의 상징인 ‘포르쉐 911(3만8464대)’을 제쳤다.지난 3월 블루메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순수 전기차 비중을 전체의 80%까지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폭스바겐 CEO로 선임되기 직전 포르쉐에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만들겠다고도 발표했다.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점은 전임자인 디스와 같지만 리더십은 반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의 전기차 사업을 주도한 디스는 지난해 “전기차 전환이 늦어지면 (폭스바겐에서) 일자리 3만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해 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반면 블루메는 직원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포르쉐 CEO로 점찍었던 마티아스 뮐러 전 폭스바겐 CEO는 그를 “팀플레이어”라고 평가했다.크리스 브라이언트 블룸버그 산업 담당 칼럼니스트는 “블루메는 포르쉐 CEO 시절 타이칸을 출시하며 ‘잘못된 깃털(고용)’을 건드리지 않고 급진적인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폭스바겐 CEO가 된 뒤에도 혁명보다 진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결해야 할 그룹 현안 산적폭스바겐그룹은 매출 기준 자동차 세계 1위다. 그룹의 ‘얼굴’ 폭스바겐과 스코다, 세아트 등 대중적인 브랜드부터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매년 글로벌 주요 기업의 직전 회계연도 매출을 바탕으로 집계하는 ‘글로벌 500’에서 폭스바겐은 올해 8위를 기록했다. 자동차 기업 중 유일하게 상위 10위권에 올랐다.그러나 판매량은 2020년 도요타에 추월당했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도 400만6000대로 도요타(513만8000대)보다 110만대 이상 적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대응에서 도요타에 뒤졌다는 평가다. 전기차 분야에서는 압도적 1위 테슬라와의 격차가 크다. 비야디(BYD) 등 자국 수요의 힘으로 급성장한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린다는 평가다.다음달 취임하는 블루메가 풀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그룹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의 정상화다. 디스 CEO 시절 카리아드에서 전기차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이 지연되면서 그룹의 전기차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유럽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유럽은 “소프트웨어 문제로 올 4분기 출시될 예정이던 포르쉐 SUV 마칸의 전기차 버전 공개가 미뤄졌고, 아우디의 전기차 개발팀 아르테미스의 전기차 출시 시기도 2025년에서 2027년으로 연기됐다”고 전했다. 이어 “폭스바겐 오너 일가마저 디스 CEO에게 등 돌린 이유는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강조했다.핵심 시장인 중국에서의 점유율 회복도 시급하다. 폭스바겐이 지난해 중국에 인도한 차량은 330만 대로 전년보다 14% 감소했다. 상반기는 147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0% 줄었다. 코로나19 여파와 반도체 공급난 때문이라는 것이 폭스바겐 측 설명이다. 2019년부터 중국 사업을 이끌어 온 스테판 울렌스타인 전 폭스바겐 중국법인 CEO는 지난달 사임을 앞두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폭스바겐은 2030년께 중국 자동차 판매량이 2800만~3000만 대로 세계 시장의 30~3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폭스바겐이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되려면 반드시 중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폭스바겐그룹은 올 들어 포르쉐 IPO에 본격 착수했다. 상장을 통해 마련한 실탄을 전기차와 배터리, 자율주행에 투자할 계획이다.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자동차가 무너지면 모든 산업이 붕괴합니다. 전기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사진)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대응책에 대해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가격우위를 잃지 않도록 정부가 연구개발(R&D)이나 국내 투자에 추가 세액공제 해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그래야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고 협력 부품업체의 전기차 전환도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30년 이상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동향과 산업 정책을 연구한 자동차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경제부처와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민간 기업에서 자문 역할을 해왔다.이 연구위원은 “지난 정부는 물론 새 정부도 자동차산업을 도와준 게 없고 정부 내 전문가도 안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제너럴모터스(GM)를 살리기 위해 60조원을 지원했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서도 자국 전기차에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며 “미국과의 협상이 잘 안될 경우에 대비해 보조금 공백기인 2년 동안 국내 자동차산업에 수조원을 쏟아붓는 결단을 내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연구위원은 “현대차 창사 이래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선 것은 전기차가 처음”이라며 “현대차가 멈춘 사이 도요타가 쫓아오면 판세가 뒤집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대차가 2년 만에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듯이 판도는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며 “보조금을 등에 업은 미국 업체들이 시장 굳히기에 들어가면 뒤늦게 점유율을 빼앗아 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그는 정부와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가 손잡고 미국 내 우호세력을 최대한 끌어들여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대차와 기아, LG에너지솔루션 공장이 있는 앨라배마, 조지아, 미시간주의 주지사는 물론 친한파 연방 상·하원의원까지 총동원해 미 행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공동 대응을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미국을 설득하는 데 세계무역기구(WTO)보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WTO의 경우 미국이 2017년부터 상소기구 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무력해진 상태다. 그는 “주요 자동차 수출국 중 미국과 FTA를 체결한 곳은 한국밖에 없다”며 “협정에 따른 최혜국 대우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 FTA에 따르면 수입품 대신 국내 상품의 사용을 조건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이 금지돼 있다.한국 자동차에 유리하도록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손질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이 연구위원은 “내수시장이 크고 수입 제품도 많은 미국과 달리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가다간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우리도 미국처럼 대응했다간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아의 미래 모빌리티 전환 핵심 카드인 경기 화성 전기자동차 신공장 건설이 노동조합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회사 측은 연 10만 대 규모로 우선 가동한 뒤 증설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노조는 시작부터 연 20만 대 규모로 지어야 한다며 추진을 막고 있다.현지 생산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전기차의 미국 현지 생산 필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노조가 국내에 짓기로 한 공장마저 몽니를 부린다는 비판이 나온다.26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최근 “국내에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화성 신공장 건설 일정이 지연돼 관련 부서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신공장 건설과 관련한 노사 협의를 재개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화성공장장 명의로 노조에 발송했다. 노조가 신공장 규모와 외주화 가능성을 문제 삼으며 고용안정소위원회 협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노조는 고용소위 협의를 재개했지만 양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노사 간 가장 큰 쟁점은 공장 규모다. 사측은 목적기반차량(PBV) 시장 선점을 위해 10만 대 규모로 건설한 뒤 증설하겠다는 입장이다. 송민수 화성공장장은 노사 협의에서 “공장 규모가 커지면 공사 기간이 길어져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며 “시장을 주도하려면 빠르게 생산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처음부터 20만 대 규모를 보장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범퍼 등 부품 생산을 외주화하려 한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고 있다. 기아, PBV시장 선점 차질 빚나일종의 ‘기업 맞춤형 전기차’인 목적기반차량(PBV)은 기아가 핵심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사업이다. PBV 공장을 빠르게 완공해 2024년 픽업트럭과 2025년 중형 PBV를 양산한다는 게 기아의 계획이다. 그러나 시작도 전에 노조가 공장 건설을 막아서면서 ‘속도전’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신공장 예정 부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 착공을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내와 달리 현대차의 미국 조지아 신공장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대차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자 조지아 공장 건설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현지 시공업체 바넷서던을 통해 현장 감독관, 운전자 등 대규모 인력을 채용하며 이들에게 한 사람당 1200달러(약 160만원)의 계약금을 지급하고 있다.미국의 IRA 시행에 대한 대응책 마련은 난항을 겪고 있다. 정진석 국회 부의장 등 방미 중인 여야 의원들은 2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을 만나 현대의 조지아 전기차 공장 준공(2024년 예상) 때까지 법 적용을 유예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당국자들은 “한국의 우려와 분노를 잘 인지하고 있지만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 또한 IRA에 긴박하게 대응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앨라배마 공장에서 GLE 전기모델 등 10만 대 이상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박한신/김형규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