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았던 곡물 가격이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밀 가격은 부셸당 7.7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 5월(12.8달러) 대비 40% 떨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테벨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았던 곡물 가격이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밀 가격은 부셸당 7.7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 5월(12.8달러) 대비 40% 떨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테벨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밀과 옥수수 가격이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한때 품귀 현상을 빚은 팜유는 전쟁 직전 가격보다 30% 이상 떨어졌다. 국제 곡물 가격 하락과 달러 강세가 결합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가뭄과 신흥 국가의 통화 가치 하락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밀 수출 늘었다

美인플레 정점론 확산…'장바구니 물가' 끌어올린 곡물값 40% 하락
23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 가격은 지난주 부셸(1부셸=27.2㎏)당 7.7달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가격보다 낮았다. 12.8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 5월에 비해 40%가량 하락했다.

옥수수와 쌀 가격도 전쟁 전보다 더 떨어져 안정세를 보인 연초 가격으로 복귀했다. 팜유 역시 전쟁 이전보다 30% 넘게 하락했다. 연초에 비해선 25% 떨어졌다.

러시아의 밀 수출이 늘어난 것이 가격 하락의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의 밀 수출은 3800만t으로 지난해보다 200만t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밀 생산국이다. 유엔 중재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재개된 것도 국제 곡물가 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평가했다.

투자은행인 르네상스캐피털의 찰스 로버트슨은 “전쟁이 발발한 뒤 곡물 거래 담당자들이 지나치게 흥분한 측면이 있었다”며 “이 때문에 투기적 수요로 곡물 가격 변동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1년 뒤 인플레 확 낮아질 것”

천연가스를 뺀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인 가운데 곡물 가격까지 떨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추적하는 클리블랜드연방은행의 ‘인플레이션 나우캐스팅’은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지난해 동기 대비 8.28%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8.5%였던 7월보다 0.2%포인트가량 낮다. 전월 대비 기준으로도 8월 CPI는 0.0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6월 6.8%를 찍은 개인소비지출(PCE)도 7월 6.38%로 내려간 뒤 8월 6.16%로 재차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얀 헤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블룸버그TV에 출연해 “1~2년 뒤에는 인플레이션이 현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CPI 등이 예상보다 낮게 나와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이 누그러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지지율도 올랐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함께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1%를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은 것은 6월 초 이후 두 달여 만이다.

하지만 위험 요인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달러 강세 효과를 보고 있는 미국 외에 곡물 가격 인하를 체감할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밀 수입이 많은 터키와 이집트의 통화 가치는 올해에만 달러화 대비 각각 26%, 18% 떨어졌다. 해당 국가 통화로 표시되는 수입 가격은 그만큼 올라간다. 세계적 가뭄으로 작황이 악화해 곡물 가격이 다시 오를 여지도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비료 원료인 요소 가격이 여전히 비싸 곡물 생산비용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곡물 가격이 다시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정인설/뉴욕=김현석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