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양국 교역 증가…우크라전 '중재자'로 존재감 발휘
러·튀르키예 밀착에 제재 무용지물 될라…서방 고민 깊어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와 밀착하는 튀르키예(터키)를 보는 서방의 고민이 커지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자금지원과 경제 제재를 두 축으로 러시아를 압박하려는데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여전히 우호적인 탓에 제재의 효과가 무뎌질 수 있어서다.

튀르키예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튀르키예에 새로 문을 연 러시아 국적 업체는 올해 상반기에만 500곳으로 작년 전체의 배를 웃돈다.

전쟁 속에서도 양국 간 교역도 눈에 띄게 늘었다.

튀르키예의 7월 대러시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5% 급증했다.

제재 여파로 러시아가 자국 내 유럽산 제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튀르키예산 수입을 늘린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로 유럽이 겨울을 앞두고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튀르키예는 예외다.

튀르키예의 올해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배로 늘었고 같은 기간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도 51.9% 증가했다.

튀르키예가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유일한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양국의 이런 거래는 이미 예견된 측면이 없지 않다.

전쟁 초기부터 철저한 '실리 외교'를 선택한 레제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행보와도 일맥 상통한다.

WSJ는 러시아와 튀르키예가 교역을 늘리고 있는 건 양국 모두 경제난을 타개하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외화 부족과 통화정책 실패 등으로 직면한 경제난을 돌파해야 하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서방의 제재망을 피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달 초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산 가스 수입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기로 하는 등 합의가 도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방으로선 튀르키예의 독자 행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 제재 고삐도 느슨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튀르키예가 러시아 경제의 '숨통'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은 최근 튀르키예 경영인 협회 2곳에 보낸 서한에서 제재를 받는 러시아인들과 함께 일한다면 튀르키예 기관들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WSJ는 전했다.

아데예모 부장관은 앞서 19일 유누스 엘리타스 튀르키예 재무부 차관과 통화에서도 러시아 기업과 개인이 튀르키예를 이용해 제재를 우회하려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아울러 6월 이례적으로 튀르키예를 직접 찾아 비공식적으로 제재 준수를 강조했다고 미 당국자들은 전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재개 합의 등 튀르키예가 전쟁 주요 사안마다 '린치핀'(핵심축) 역할을 해 서방이 노골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적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동의할지를 두고 서방의 애를 태우는가 하면 최근에는 유엔과 함께 우크라이나 곡물 재개 협상을 끌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곡물 재개 협상을 발판 삼아 중단된 평화협상 재개 중재자로도 자처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3일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제2회 크림 플랫폼' 화상 연설에서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반환을 지지한다"며 서방 쪽에 한 발 걸치기도 했다.

스웨덴 은행인 한델스방켄의 에리크 메위에르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유럽으로서는 튀르키예와 대립각을 세우는 데는 많은 대가가 뒤따른다"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