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물가가 7년 7개월 만에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에너지·식품 가격 상승과 엔화 약세가 겹치면서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째 금융당국의 목표치를 웃돌았다.

일본 총무성은 “전년 동기 대비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2.4%를 기록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전월(2.2%) 대비 0.2%포인트 늘었다. 소비세 인상 여파로 물가가 급등했던 2014년 12월(2.5%)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세금 인상 효과를 배제하면 2008년 8월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로 경기 동향을 파악할 때는 신선식품처럼 변동성이 큰 요인을 제외한 지표인 근원 물가상승률을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신선식품을 포함한 일본의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를 기록했다. 전월(2.4%) 대비 0.2%포인트 올랐다.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개월째 2%대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률 2%는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목표로 내건 값이다. 하지만 지난 4월 이후 지난달까지 물가 상승률은 2.1→2.1→2.2→2.4%로 증가 추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내각 개편 후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상황이다. 다음달 초까지 에너지와 식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물가 상승을 이끈 품목은 에너지와 식품이다. 가스, 전기를 포함한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6.2%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식품 가격은 3.7% 상승해 2015년 3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의 근간엔 엔화 약세가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8일 1달러 당 엔 환율은 135.88엔을 기록했다. 올 초(1월 3일) 환율(115.32엔) 대비 18% 올랐다. 일본은행은 2016년 1월 이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이날 -0.10%)로 유지하고 있다. 엔화 약세로 투자 유치를 늘리고 수출 여건을 개선해 소비 확대와 임금 인상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수입 물가 부담도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

금융업계에선 엔화 약세가 경기부양 보다는 가계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마루야마 요시마사 SMBC닛코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핵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에 달할 것”며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밑돌면서 가계 구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시타 마리 다이와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내 물가 상승률이 3%에 이르면 일본은행에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시장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의 초저금리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물가 상승률이 오름세이지만 여전히 EU(8.9%), 영국(10.1%)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편이어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미나미 다케시 농림중앙금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인플레이션은 강한 수요에 의한 게 아니라 수입 가격 상승이 원인”이라며 “일본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