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실업난 속 대중 강경론 먹혀…부패 타파 공약도
돈독한 양국 관계상 일각서 '공염불' 관측도
中 일대일로 핵심 협력국 케냐 대선서 반중 외친 후보 당선
중국 자본이 깊숙이 침투한 아프리카 케냐에서 반중 기치를 내건 윌리엄 루토 현 부통령이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경제투자 측면에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던 양국 관계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케냐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현 부통령인 루토 후보가 50.49%의 득표율로 오랜 야당 지도자 출신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고 15일 밝혔다.

대중 정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번 선거에서 루토 당선인은 대중 강경론을 강조하며 오딩가 상대 후보와 차별화를 꾀했다.

친중 정책을 폈던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이 지지한 오딩가 후보는 당선되면 상환기간이나 이자를 조정하는 등 대중 대출을 손보겠다고 약속했고 루토 당선인은 중국에 더는 돈을 빌리지 않겠다며 한층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루토 당선인은 2017년 중국의 대규모 자금으로 완공된 표준궤도철도(SGR) 계약서를 국민에 공개하기도 했다.

SGR는 수도 나이로비와 몸바사 항구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이지만 막대한 적자운영으로 애물단지가 됐다.

中 일대일로 핵심 협력국 케냐 대선서 반중 외친 후보 당선
루토 당선인은 더 나아가 높은 실업률에 직면한 케냐에서 자국민 일자리를 빼앗는 불법 체류 중국인을 내쫓겠다고도 공언했다.

당면한 케냐의 부채와 생활고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 중국의 책임론을 꺼내 들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 일환으로 케냐 기간시설 등에 자금을 대면서 세계은행을 제외하고 케냐의 최대 채권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케냐 국민은 코로나19 여파에 더해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면서 치솟는 생활비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전문가 애드히어 캐빈스는 지난달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현재 케냐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고 이중 특히 채무의 덫과 관련해 중국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며 "정치인은 비난할 수 있는 모든 걸 활용하는데 루토 부통령한테는 중국이 매우 쉬운 표적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中 일대일로 핵심 협력국 케냐 대선서 반중 외친 후보 당선
루토 당선자의 반중 행보는 한편으로는 재임 당시 친중 정책을 펴며 부패에 연루된 케냐타 정부와 거리를 두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케냐 정부는 중국의 대규모 사업과 관련해 만연한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케냐 국민은 현 정부가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것에 분노했다.

중국과 아프리카 관계를 연구하는 싱크탱크 '차이나-글로벌사우스프로젝트'(CGSP) 소속 케냐 연구원 클리프 음보야는 "평범한 케냐인 상당수는 (일대일로)사업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대출에 대해선 화가 나 있다"며 "정치인에게 이득을 주기 위해 많은 돈이 빼돌려졌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루토 당선인의 대중 강경론은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단순 공허한 미사여구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발전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케냐의 수요와 경제 외교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 양측이 관계를 쉽사리 끊어내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초대 부통령 아들로 정치 귀족 출신인 오딩가 후보와 달리 서민적 배경을 내세운 루토 당선자의 이미지 차별화가 유권자의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하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학창 시절 맨발로 치킨을 팔러 다니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진 루토 당선인은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에는 2년여간 짧게 교사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