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유럽연합(EU) 간 에너지 수급을 둘러싼 마찰이 천연가스에서 석유로 옮겨붙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국을 거쳐 동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 송유관을 일시 차단하면서다. 러시아가 전송료를 급히 지급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언제든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유럽 3국' 석유공급 일시 중단…러시아·EU, 커지는 에너지 갈등
러시아 국영 송유관 회사 트란스네프트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로 향하는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한 원유 공급이 중단됐다”고 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트란스네프트에 따르면 원유 공급을 끊은 주체는 우크라이나 원유 전송업체인 우크르트란스나프타다. 이 회사는 드루즈바 송유관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통과하는 부분을 운영하는 업체다. 지난 4일 오전 6시10분부터 동유럽 3개국으로의 석유 공급을 끊었다는 설명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송유관 사용료(통행료)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그동안 매달 1500만달러(약 196억원) 상당의 통행료를 선불로 받고 송유관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대금을 받지 못하자 막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EU 제재 때문에 통행료 자체를 전달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지난달 22일에 대금을 선납했으나 EU 은행들이 당국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6일 만에 통행료를 러시아에 반환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진실 공방은 우크르트란스나프타가 전송료를 받은 것을 확인했다고 트란스네프트가 밝히면서 해결됐다. 이에 따라 트란스네프트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로 향하는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한 석유 공급이 10일 오후 재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등은 보도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측 구매 업체인 MOL과 슬로브나프트가 전송료를 내겠다고 제안했고, 트란스네프트와 우크르트란스나프타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취약한 동유럽 국가가 여전히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러시아가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체코에 공급하는 원유는 작년 7월 하루 평균 24만6000배럴 규모에서 지난달 약 31만8000배럴로 오히려 증가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