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사이에 둔 미·중의 대립은 뿌리가 깊다. 1949년 대만 정부가 세워진 후에만 세 차례 전쟁 직전의 갈등을 겪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대만해협에서 발발한 ‘1~3차 대만해협 위기’다.

1차 대만해협 위기는 중국 국공내전 이후인 1954년 발발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 주석은 대만에 자리잡았다. 6·25전쟁 이후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은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만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논의에 들어갔다. 이에 반발한 중국은 1954년 8월 대만 금문도를 포격했다. 미국은 대만에 해군력을 배치하며 지원했고, 그해 말 대만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듬해 5월 중국이 미국과의 타협을 선택하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4년 뒤인 1958년 중국이 금문도에 또다시 포격을 가하며 2차 위기가 시작됐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포탄 47만 발을 대만에 퍼부었고, 대만도 12만 발을 발사하며 대응했다. 미국은 함선과 전투기를 보내 대만을 지원했다. 1979년 미·중 수교를 맺으며 포격은 중단됐다.

가장 최근인 3차 위기는 27년 전인 1995년 발발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던 리덩후이 당시 총통이 그해 6월 모교인 미국 코넬대에서 연설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면서다. 중국은 이를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1995년 7월과 이듬해 중국은 대만 인근 해역에서 미사일 발사를 동반한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은 항모전단 2개를 대만해협에 급파했다. 리 총통이 재선된 후 중국과 미국이 각자 병력을 철수하며 상황은 종료됐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