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선서 과정에서 문구 바꿔…의장 명령에 다시 진행
"영국 여왕은 식민지배자" 원주민 출신 호주 상원의원 선서 논란
애버리지니(Aborigine·호주 원주민) 출신의 호주 상원의원이 의회 선서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식민지배자'라고 불러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녹색당의 리디아 소프 상원의원은 전날 의회에서 상원의원 선서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오면서 오른손 주먹을 들어 올리는 일명 '블랙파워 경례' 자세로 걸어왔다.

이어 선서를 하면서 "나 리디아 소프는 '식민지배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진정한 충성을 다할 것을 엄숙히 진심으로 맹세한다"고 말했다.

호주는 헌법에서 여전히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삼고 있어 새로 당선된 의원은 국회에서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를 한다.

하지만 소프 의원은 즉석에서 '식민지배자'라는 표현을 여왕 앞에 붙여 맹세한 것이다.

그의 돌발 행동에 주위 의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비난했고, 수 라인스 호주 상원 의장은 "선서 문구를 정확히 낭독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그는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선서를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지만, 결국 문구를 다시 정확히 읽은 뒤에야 선서를 마칠 수 있었다.

소프 의원은 이후 트위터에 "주권은 절대로 양도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녹색당 대표인 애덤 밴트 하원의원도 주먹을 치켜든 소프 의원의 사진을 리트윗하며 "(그는) 항상 그랬고, 항상 그럴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보수당을 중심으로 그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자유당 원내 상원 대표인 사이먼 버밍엄 의원은 "불필요하고 무례한 행동이었다"며 "우리는 변화를 주장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를 추구하는 기관을 존중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어머니가 호주 원주민인 자신타 남피진파 프라이스 의원도 "그의 행동에는 분명 미숙함이 있었다"며 "선서를 하고 싶지 않으면 그 일도 맡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진보당인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자 호주에서는 애보리지니를 호주의 첫번째 정착민으로 인정하고, 국가 체제도 입헌군주제가 아닌 공화정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호주 원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헌법기관을 세우겠다며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호주는 1999년에도 애버리지니를 인정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개헌이 추진됐지만, 국민 선거에서 부결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