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보도…제재 회피 목적으로 은밀히 환적한 뒤 서류 조작 의혹
"미, 이란 원유 원산지 둔갑시켜 밀수출한 중개업체 제재 검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를 밀거래한 의혹을 받는 중개업체에 대한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은 원유 중개업체들이 이라크와 이란 사이 해상에서 이란산 원유를 은밀히 선적한 뒤 서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원산지를 이라크산으로 속여 글로벌 원유 시장에 판매한 의혹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자들은 이라크 출신 영국 사업가인 살림 아흐메드 사이드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17년 중반 설립된 이라크의 원유 중개 합작회사로 사이드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는 AISSOT(Al-Iraqia Shipping Services & Oil Trading)가 다른 업체와 함께 이란산 석유 밀거래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불법 환적돼 이라크산과 뒤섞인 이란 원유는 아시아로 상당량 판매됐지만, 서방 기업인 엑손 모빌과 코크 인더스트리즈, 셸 등도 관련 거래에 연관이 돼 있다고 WSJ은 전직 직원들과 관련 문건을 인용해 전했다.

다만 해당 서방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제재를 위반한 혐의는 현재까지 없다고 WSJ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이드는 WSJ에 보낸 이메일에서 "나는 석유회사 이콘(IKON)과 수송회사인 라인(Rhine)의 대표일 뿐, AISSOT 소유주가 아니다"라며 "내가 소유한 회사들은 미 제재에 반해 이란 원유를 수송하지 않았고, 이라크와 모든 거래는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원유 밀수출과 관련된 업체에 대한 제재 카드를 검토하고 나선 것은 최근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란에 대한 전방위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한 고위 당국자는 "이란이 미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핵합의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이런 종류의 제재 위반을 적발하기 위한 조처는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미국이 원유 수출 강국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제재 회피 기업을 겨냥한 추가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를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고 전·현직 당국자들은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란 원유의 밀수출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대이란 정책을 담당한 로버트 그린웨이 전 중동·북아프리카 담당 선임국장은 이라크산 혼합 수출을 포함한 제재 회피 행위가 2020년 NSC에 근무할 당시 이란의 전체 원유 수출의 25%를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으로선 그런 수출 방식이 굉장히 중요했다"며 "이란이 (제재로 인해) 시장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