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출 길이 막힌 우크라이나의 곡물이 글로벌 시장에 다시 풀릴 전망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유엔 등이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곡물을 운송하는 내용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급등한 주요 곡물 가격이 안정되고 세계 식량 위기도 다소 완화될 것이라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곡물 곧바로 수출

우크라 밀·옥수수 2000만t 수출길 열린다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올렉산드르 쿠브라코프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장관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흑해를 통해 곡물을 수출하는 합의문에 서명하기 위해 이날 튀르키예(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만났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동석했다. 지난 14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유엔, 튀르키예 대표단이 이스탄불에서 4자 협상을 열고 흑해 항로에 안전보장 조정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에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합의문 서명이 완료되면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통해 곡물을 수출할 수 있다. 오데사항을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주요 항구를 다시 열 수 있어서다. 그동안 러시아 군은 오데사항 등을 봉쇄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항구에 묶여 있는 밀, 보리 등 곡물의 양은 약 2000만t이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가 올여름 수확할 곡물은 6500만t으로 추정된다.

BBC방송은 4자 협상을 통해 나온 합의안에는 오데사항에서 곡물 운송선이 이동할 때 러시아군이 공격을 중단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운송선이 오데사항 기뢰 부설 해역을 통과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함정이 항로를 인도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우려하는 무기 밀반입·반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튀르키예가 수출입 선박을 검사하기로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흑해는 우크라이나 곡물의 90%가 운송되는 핵심 해상 수출로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봉쇄돼 우크라이나 주요 수출 곡물인 밀과 옥수수, 보리, 해바라기씨 등이 외부로 반출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과 옥수수, 보리 시장에서 1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또 세계 해바라기씨유의 50%가량을 생산해왔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이 막히자 아프리카와 중동 등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의존도가 높은 수입국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세계적인 가뭄이 겹치면서 글로벌 곡물 가격은 상승했다.

러시아 합의 이행 여부가 변수

미국은 합의안 타결을 환영하면서도 러시아의 합의 이행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앞서 21일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합의문에 서명하기로 한 것과 관련, “환영할 만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중요한 것은 합의 이행”이라며 “우리는 러시아가 합의를 이행하도록 책임을 지게끔 파트너들과 계속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초에 이런 (수출 봉쇄) 상황이 만들어져선 안 됐다”며 “식량을 무기화하려는 러시아의 의도적인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당국자들도 CNN에 “러시아가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협정을 이행할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러시아 해군이 흑해를 봉쇄해 곡물 수출이 제한됐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농가 곡물을 훔쳐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러시아는 자국군이 항구를 봉쇄한 적이 없으며, 우크라이나가 기뢰를 부설해 항구 출입을 막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글로벌 식량 위기 또한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 탓에 러시아산 식량·비료 수출이 막히면서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주장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면서 러시아와도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튀르키예는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과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을 중재해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