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9%를 넘으며 41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웠지만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하고 있어서다.

에너지·원자재 하락세…美 '인플레 정점' 찍었나
13일(현지시간) 미 증시는 예상치를 웃도는 CPI 상승률이 발표된 직후 급락했다. 하지만 장중 하락세를 크게 만회하며 약보합으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와 S&P500지수는 전일 대비 각각 0.68%, 0.45% 하락하는 데 그쳤다. 나스닥은 0.15% 떨어졌다. 인플레이션 공포에 비해 주요 지수 하락폭이 작았던 셈이다.

주요 지수들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물가 상승률에도 선방한 것은 인플레 정점론이 제기되면서다. 물가에 영향력이 큰 유가와 각종 원자재 가격이 내리고 있어 7월 CPI는 지난 6월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사상 최초로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섰던 미국 휘발유 가격은 최근 4달러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지난 6일 4.779달러였던 미 휘발유 가격은 13일 4.631달러로 1주일 만에 3%가량 내렸다. 고공행진하던 국제 유가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던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이달 들어 100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국제 유가의 벤치마크인 북해산 브렌트유도 100달러 이하 가격에서 거래 중이다. 12일 브렌트유는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전날 대비 7.11% 급락해 99.4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원유 가격 하락 전망에 힘을 실었다. IEA는 이날 배포한 정례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의 원유 수요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미국, 캐나다 등 산유국이 증산에 나서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가 석유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작을 것으로 봤다. 여기에 유가 급등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경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구리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구리 가격은 4월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어 2020년 11월 이후 약 20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문가들도 인플레 피크아웃(정점 찍고 하락) 가능성을 제기했다. 프레스턴 콜드웰 모닝스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 문제는 대부분 에너지와 식품의 공급 차질에 의해 주도됐고 6월 CPI도 이 연장선에 있다”며 “하지만 이달 들어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급락해 다음 CPI 상승률이 급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