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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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철갑상어 알)는 푸아그라(거위 간), 트러플(송로버섯)과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음식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생선의 알을 소금에 절인 음식을 뜻하지만 최고급으로 치는 건 철갑상어의 검은 알입니다. 철갑상어는 러시아와 유럽, 흑해와 카스피해 등에 분포합니다. 전통적인 최대 수출국은 러시아지요.

캐비어는 독특한 풍미와 한정된 생산량으로 오래 전부터 유럽 등지에서 ‘부의 상징’으로 꼽히며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과거 귀족들을 공략해 캐비어 전용 트렁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요즘 이 캐비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영국은 대러 제재의 일환으로 지난 4월 러시아산 캐비어와 은 등 사치품 수입을 금지하고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국 내 캐비어 업계에서 캐비어 품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다릅니다. 바로 브렉시트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이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이후 캐비어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은 15년 전부터 러시아산 캐비어를 수입해왔습니다. 다만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캐비어는 주로 프랑스와 벨기에산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브렉시트로 EU로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자 이 국가들로부터 캐비어를 수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확 늘었고, 가격도 뛴 거지요.

1920년 파리에서 설립된 캐비어 전문점 ‘페트로시안’의 영국 지사 상무 라파엘 시몬스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 이전에는 48시간이면 캐비어를 수입했지만 현재는 6~8주까지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생긴 무역 절차에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캐비어 수입 비용은 이전보다 5~20% 올랐다고 시몬스는 전했습니다.

캐비어 수입 절차 자체가 복잡한 영향도 있습니다. 캐비어 수입과 수출은 2008년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1980~1990년대 러시아와 이란이 카스피해에서 철갑상어를 남획하며 철갑상어가 멸종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현재 벨기에 및 프랑스산 캐비어가 영국으로 수입되려면 양국 국경에서 세관이 캐비어가 합법적으로 생산된 제품인지 CITES 증명서를 통해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캐비어의 유통기한입니다. 살균 처리를 하지 않은 고급 캐비어는 유통기한이 56일입니다. 8주지요. 프랑스 또는 벨기에에서 6주 만에 수입된다고 해도 영국에서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이 2주밖에 남지 않습니다. 수입에 시간이 걸리면 영국에 도착했을 때 유통기한이 끝났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수입산 캐비어 품귀난이 영국의 캐비어 생산업체들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캐비어 기업 ‘엑스무어 캐비어’는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20~3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영국 국민들이 러시아산이 아닌 자국산 캐비어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도 호재라고 합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