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취임하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당선인은 농무부 장관을 겸직하기로 했다. 가장 큰 현안인 식량 위기를 최우선 과제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필리핀의 식품 물가는 지난달에만 4.9% 올랐다.

특히 설탕 작황이 좋지 않다. 2022추수연도(2021년 9월~2022년 8월) 필리핀의 설탕 생산량은 지난 2월 전망된 207만t 이하가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지난해 12월 태풍 오데트와 폭우가 겹치면서 이달 중순까지 생산량이 180만t에 그쳤다. 필리핀 설탕규제청(SRA)은 “정제설탕 약 20만t 수입까지 지연되고 있다”며 “설탕 재고가 바닥날 지경이 되자 가격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 생산 줄어 공급 불안
설탕 공급난은 필리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1위 설탕 생산국인 브라질은 올해 생산량 감소가 유력하다. 2위 설탕 생산국인 인도는 수출량을 규제하기로 했다. 이상기후와 고유가가 악재로 겹치면서 세계 각국이 설탕 공급난에 신음하고 있다.

브라질 흉작, 인도는 수출 제한…"설탕값 더 치솟는다"
지난 27일 미국 ICE선물거래소에서 설탕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18.25센트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16.90센트) 대비 8% 올랐다. 2년 전 가격(11.55센트)보다는 58% 높다. 20달러를 웃돌던 4월 중순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가격이 높은 건 마찬가지다.

유엔 세계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설탕가격지수는 지난달 120.3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국제 설탕가격을 100으로 놓고 환산한다. 지난 4월 이 지수는 121.5를 기록해 2017년 2월(125.6) 이후 62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설탕 가격 상승은 공급난과 떼어놓을 수 없다. 브라질은 2021추수연도 기준으로 세계 설탕 생산량의 23%를 차지한다. 수출량 기준으로 세계 점유율은 52%에 달한다. 이런 브라질의 공급 사정이 올해 나빠졌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브라질의 2022추수연도 예상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 급감할 전망이다. 라니냐의 직격탄을 맞은 여파다. 여기에 일부 농장주가 수익성이 더 높은 콩 및 옥수수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공급량 감소가 심화됐다.

2위 설탕 생산국인 인도는 작황이 좋은 편이다. 브라질을 제치고 최대 생산국 등극이 유력하다. 2022추수연도 생산량이 전년 대비 9% 늘어난 3688만t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수출을 막았다. 지난달 식량 인플레이션 대응을 이유로 연간 설탕 수출량을 1000만t으로 제한했다. 인도가 2021추수연도에 수출했던 물량 746만t보다는 상한이 높지만 시장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인도가 내건 수출 상한은 브라질의 2021추수연도 수출량인 3215만t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고유가로 에탄올 수요까지 늘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고유가와 비료 가격 상승도 설탕 가격 상승에 불을 지폈다. 특히 고유가는 다른 식자재보다 설탕 공급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가 휘발유에 혼합해 쓰는 바이오 에탄올의 원료로도 쓰여서다. 고유가를 잡기 위한 에탄올 증가가 식량난 심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USDA에 따르면 브라질은 사탕수수 수확량의 55%를 에탄올, 45%를 설탕에 쓰고 있다. 인도도 지난달 설탕 수출량을 제한하며 “사탕수수를 통해 에탄올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설탕 소비국인 미국도 고유가 대처를 위해 올여름 휘발유 내 에탄올 혼합 비중을 15%로 상향했다. 그간 미국은 환경오염을 이유로 여름철 에탄올 혼합 비중을 10%로 제한했다.

설상가상으로 주소비국인 미국의 설탕 생산량도 예년만 못할 전망이다. USDA는 지난 18일 2022추수연도(2021년 10월~2022년 9월) 설탕 생산량 전망치를 전월 예상보다 30만3000t 낮췄다. 미국의 연간 설탕 생산량은 2021년산 923만4000t, 2022년산 912만t, 2023년산 882만2000t으로 해마다 감소할 전망이다. 중국도 올해 자국 설탕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가를 잡지 못하면 설탕 가격의 고공행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FAO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금은 사탕수수로 에탄올보다 설탕을 생산하는 게 수익성이 더 높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며 “유가가 내려가지 않으면 설탕 공급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설탕 소비량은 129만2000t이었다. 이 중 수입량은 8%인 10만8000t이었다. 수입량의 70%가 작황이 좋은 태국산이어서 한국의 설탕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