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가 러시아의 원유 수출 확대에 일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를 직접 수입한 걸 넘어서 러시아 유조선들의 안전 검증을 지원하며 수출길을 내줬다. 서방국가의 대러시아 제재가 무력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는 인도선급협회(IRI)가 러시아 국영 선사인 소브콤플로트의 유조선들에 안전 검증 확인을 해줬다고 보도했다. IRI의 인증 덕에 러시아 유조선들은 인도 외에 다른 항구로 원유를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 선급협회 중 하나인 IRI는 해상 운송의 서류작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이다. 선급협회의 안전 검증 확인서가 있어야만 운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인서가 지닌 효력이 크다. 검증 절차를 거친 뒤에야 선사들은 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입항절차도 간소화된다.

IRI는 지금까지 소브콤플로트가 보유한 선박 80여척에 안전 검증 절차를 완료했다. 대부분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를 경유해 검증이 이뤄졌다. 소브콤플로트의 두바이 법인이 선박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소브콤플로트는 두바이 법인을 통해 선박 연료 보급·수리, 선원 확보, 금융서비스 등을 이용하며 서방 제재를 무력화하고 있다.

인도의 단독행동에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다. 국제선급연합회(IACS) IACS는 지난 3월 회원사들의 투표를 통해 러시아선급협회를 축출시켰다. IACS 회원국의 선주들은 선박 국적 확인 및 입항 절차, 안전보장 서비스 등 운항 과정에서 혜택을 받는다.

미국, 영국, 노르웨이, 프랑스 등 주요 회원국 4곳은 러시아 선사에 어떤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연합회가 다른 회원국의 행동을 제한할 수 없다. IACS 차원에서 회원사의 선박 평가 및 각종 승인 절차, 분류 및 증명서 발급 등 모든 과정에 개입하지 않아서다. IACS 대변인은 “러시아 제재 문제는 연합회 내부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방국가들이 시행할 대러시아 제재안이 시행 전부터 무력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지난 16일 러시아 원유를 운반하는 유조선들의 보험 가입을 원천 차단할 방침이다. EU는 유조선 보험 차단 안을 6차 러시아 제재안에 포함했다. 이르면 올해 12월부터 보험 가입을 차단할 계획이다.

유조선은 운항 과정에서 원유 유출 등 사고 위험이 커서 보험 가입이 필수다.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면 운항 자체가 불가능하다. 해운 관련 보험 시장을 EU 회원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강력한 제재가 될 거라 예상했지만 허점이 생겼다.

인도는 정부 차원에서 보험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국 보험사와 홍콩 브로커를 통해 러시아 국적 화물선 4척에 재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적 선박을 보호해 러시아산 원유를 헐값에 들여오려는 취지다. 인도 내 항구로 원유를 수송하는 선박의 약 80%가 EU 선주 소속이다. 인도 정부 입장에선 제재안이 발효되기 전에 선사를 바꿔야 원유를 수입할 수 있다.

WSJ은 21일 인도 행정부 관계자들이 국영석유공사 임원들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독려했다고 보도했다. 원자재 조사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는 지난 2월 전쟁 전보다 25배 많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수입량이 지난 2월 하루 평균 3만 배럴에서 이번 달에는 하루 평균 100만 배럴로 증가했다.

러시아 국영기업들도 스위스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로 중개 거점을 옮기고 있다. 스위스도 EU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로즈네프트, 루크오일, 가스프롬 등 러시아의 3대 정유사는 유럽 자회사들의 무역 거점을 두바이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터 야콥스 에라스무스대 교수는 “(각종 제재에도) 러시아산 제품 거래는 계속될 것”이라며 “중동이나 아시아 지역은 유로 중심인 유럽보다 거래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