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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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사업을 영위하던 다국적 기업들이 전쟁으로 인해 590억달러(약 75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러시아에서 긴급히 사업을 철수해 자산을 매각할 여유가 없어서였다. 주식시장에선 투자자들이 러시아 철수 기업을 더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일대학교 연구를 인용해 글로벌 기업들이 전쟁으로 입은 피해액인 590억달러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제재로 사업 철수를 결정하며 자산 가치가 대폭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로 지금까지 1000여개에 달하는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벌이던 사업을 접었다. 철수 당시 대다수 기업이 자산 가치를 낮춰잡았다. 러시아 지역의 구매력이 약한 데다 자산을 매수할 대상도 현지에서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서였다. 미국 회계기준 및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손상되거나 감가상각된 가치는 모두 비용으로 기록된다.

다양한 업종에 걸쳐 적자 폭이 증대됐다. 은행과 양조장, 유통업체를 비롯해 풍력 터빈 업체 등도 적자를 감수했다. 맥도날드는 러시아 점포들을 현지 업체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뒤 최대 14억달러(1조 7920억원)를 비용으로 기록할 방침이다. 엑손 모빌은 러시아 극동지역 석유 사업을 중단한 뒤 34억달러(4조 3520억원)의 손실을 봤고, 버드와이저는 11억달러(약 1조 4000억원)를 손해 봤다.

영국의 정유사 BP도 러시아 업체의 지분을 비용으로 기록했다. 로즈네프트 지분 135억달러어치를 상각했다. 리스크 컨설팅업체 크롤의 칼라 누녜스 전무는 “이번 손해가 끝이 아니다”라며 “정치적 갈등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을 포함하면 지금보다 더 큰 손실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몇 기업은 러시아에 있는 자산을 자체적으로 상각하고 있다. 세계 최대 항공기 리스업체인 에어캡은 27억달러 상당을 비용으로 처리했다. 러시아에 묶인 100여대의 항공기의 가치를 모두 상각한 것. 항공기 대부분을 러시아 항공사에 임대했다. 다른 리스 업체들도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기업들에 러시아 관련 손실을 명확히 기재하라고 명령했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손실을 추정해서 수익에 반영하지 말라는 조치다. 뉴욕 멜론은행은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이 지침을 어겼다. 러시아에서 나온 손실 8800만달러를 수익이 떨어진 것처럼 기록해 보고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금융시장이 러시아를 철수한 기업에 보상해줬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는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해서다. 예일대 연구진은 “러시아에서 손해 본 기업들의 주가 수익이 비용을 능가했다”고 설명했다. 비벡 아스트반시 인디애나대 교수가 200곳 이상의 기업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러시아를 떠난 기업의 주가가 그렇지 않은 기업 주가를 앞질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