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대표적인 ‘엔저(低) 수혜주’인 일본 수출기업의 주가는 부진에 빠졌다. 일본 기업이 누리던 엔화 약세의 이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8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달러당 엔화 가치가 1.5% 급락한 전날 닛케이225지수는 27,943.95로 0.1% 오르는 데 그쳤다. 전날 달러당 엔화 가치는 2002년 이후 최저치인 133엔(약 1254원)까지 떨어졌다. 유로 대비 엔화 가치도 142엔대로 7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일본 증시에서 엔화 약세는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초기였던 2012년 10월~2013년 5월 달러당 엔화 가치가 80엔에서 100엔으로 15% 급락했을 때 닛케이225지수는 55% 급등했다. 자동차주가 68% 뛰었고, 기계주와 소매판매주도 40%가량 올랐다.
엔저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2월 말부터 전날까지 엔화 가치는 14% 떨어졌다. 그런데도 닛케이225지수 상승률은 5%에 그쳤다. 국제 유가 급등에 힘입어 정유주만 29% 올랐을 뿐 나머지 업종의 주가는 모두 부진했다. 수입 물가 급등으로 제조 비용이 불어난 식품주와 소매판매주가 각각 7%와 2% 떨어지는 등 엔저의 역효과가 더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2009년까지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질 때 일본 200대 기업의 경상이익은 0.98% 늘었다. 하지만 엔저가 기업 이익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2012년 0.6~0.7%, 2021년 0.43%로 떨어졌다.
일본 기업의 수출 규모 자체가 줄어들면서 수출기업이 누리는 엔저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엔화 강세에 시달린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해외로 대거 이전한 영향이다.
오는 10일부터 일본이 외국인 단체관광객을 받는다. 그동안 엔화 가치가 떨어진 영향까지 더해져 관광객이 몰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일본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관련주가 크게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20년 만에 가장 싼 엔화 가치에 힘입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일본 금융투자업계에선 백화점 등 유통주를 가장 큰 수혜주로 꼽는다.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선 같은 물건을 사도 엔화가 저렴하기 때문에 본국보다 더 싼 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면세 혜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8일 이세탄미쓰코시홀딩스(종목번호 3099)는 장중 1123엔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 회사는 도쿄 긴자의 상징인 미쓰코시긴자점,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신주쿠본점 등 백화점을 운영하는 곳이다. 리오프닝이 가시화되자 이세탄미쓰코시홀딩스 주가는 지난달 12% 오른 데 이어 이달에도 3.8% 상승 중이다. 이 회사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정점을 찍은 2018년 당시 주가를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추가 상승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빅카메라(3048)도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롯데하이마트와 비슷한 가전 양판점으로 올해 주가가 17.65% 올랐다. 일본의 ‘올리브영’ 격인 마쓰키요코코카라(3088)도 올들어 21.36% 오르는 등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마쓰모토키요시와 코코카라파인 등 드럭스토어를 운영 중이다.운송과 숙박 업종도 수혜주로 꼽힌다. 게이힌급행전철(9006)과 게이세이전철(9009)은 올 들어 각각 24.61%, 17.68% 올랐다. 두 회사는 나리타공항 연결 전철을 운영하는 민영기업이다.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이 나리타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노선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도미인호텔’ 등 비즈니스호텔을 주로 운영하는 교리쓰메인테넌스(9616)도 같은 기간 26% 상승하는 등 반등하고 있다.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에서는 매주 한 가지 일본증시 이슈나 종목을 엄선해 분석합니다. 이번주에는 일본 리오프닝 관련주를 다룹니다.오는 10일부터 일본이 외국인 단체관광객을 받는다. 일본은 지난 2년 간 강도높은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펴며 외국인 관광객을 받지 않았다. 그동안 엔화 가치가 떨어진 영향까지 더해져 관광객이 몰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리오프닝 관련주가 크게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 투자자로선 20년 만에 가장 싼 엔화 가치에 힘입어 일본 리오프닝에 투자해 이익을 볼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 증권가에서 꼽고 있는 리오프닝 관련주를 업종별로 정리해봤다. ○백화점과 소비주에 몰리는 시선일본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백화점 등 유통관련주를 가장 큰 수혜주로 꼽는다.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선 같은 물건을 사도 엔화가 저렴하기 때문에 본국보다 더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면세혜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7일 이세탄미쓰코시홀딩스(종목번호 3099)는 장중 1121엔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 회사는 도쿄 긴자의 상징인 미쓰코시긴자점,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신주쿠본점 등 백화점을 운영하는 곳이다. 리오프닝이 가시화되자 이세탄미쓰코시홀딩스는 지난달 12% 오른데 이어 이달에도 3% 상승했다.같은 날 에이치투오리테일링(8242)도 장중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한큐백화점과 한신백화점 등 간사이지역을 중심으로 백화점·마트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이달에만 주가가 11.36% 올랐다.두 회사 모두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정점을 찍은 2018년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 추가 상승 여지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부유층의 소비로 주가가 상대적으로 견조했던 이세탄미쓰코시홀딩스보다는 상대적으로 매출 타격이 컸던 에이치투오리테일링이 더 많이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코로나19 피해주였던 빅카메라(3048)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 회사는 롯데하이마트와 비슷한 가전 양판점으로 올해 주가가 17% 올랐다. 일본의 '올리브영' 격인 마쓰키요코코카라도 올해 20% 오르는 등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마쓰모토키요시와 코코카라파인 등 드럭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이밖에 할인점 '돈키호테'를 운영하는 팬퍼시픽인터내셔널홀딩스(7532)도 수혜주로 꼽힌다. 다만 돈키호테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파는 만큼 인플레이션의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에 아직 지난해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유통업체에서 판매될 제품을 만드는 각종 소비브랜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브랜드는 고토부키스피리츠(2222)로 올해만 38% 올랐다. 이 회사는 일본 공항 기념품(치즈케이크, 쿠키 등)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르타오(LeTAO)'를 운영한다. 이밖에 화장품 업체인 시세이도(4911), 시계를 만드는 세이코홀딩스(8050)의 제품도 잘 팔릴 것이란 기대가 높다. ○운송과 숙박도 기대운송과 숙박 역시 수혜가 예상된다. 게이힌급행전철(9006)과 게이세이전철(9009)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나리타 공항 연결 전철을 운영하는 민영기업이다. 대부분의 외국인 관광객은 나리타 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노선의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이힌급행전철은 올 들어 23%, 게이세이전철은 16% 올랐다. 하네다 공항 여객터미널을 관리하는 일본공항빌딩(9706)도 올들어 16% 오르는 등 주목받고 있다. '도미인호텔' 등 비즈니스호텔을 주로 운영하는 교리쓰메인테넌스(9616)는 올해 26% 오르는 등 반등을 모색하고 있다. 나고야메리어트호텔 등 호텔을 운영하면서 도쿄와 신오사카를 잇는 전철을 운영하는 JR도카이(9022)는 올해 6% 오르는데 그쳤지만 향후 추가 상승을 점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일본의 올해 경상흑자 규모가 2년 만에 4분의 1 토막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원자재값 급등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 대기업은 역대 최대 규모 이익을 올리는 반면 일반 국민의 생활은 빠듯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니혼게이자이신문이 13일 민간 이코노미스트 10명의 예상치를 집계한 결과 2022년 일본의 경상수지는 평균 4조엔(약 40조원)가량 흑자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됐다. 2020년 16조엔을 넘은 경상흑자가 2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얘기다.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저(低)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가 해외 자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끌어내리는 구도가 올해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사카이 사이스케 미즈호리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유가 상승과 엔저가 겹치면서 올해 일본의 경상수지가 3000억엔 적자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전날 발표된 2021년 경상수지 흑자는 12조6442억엔으로 전년보다 22.3% 줄었다. 1조6507억엔으로 불어난 무역적자가 경상흑자를 7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2조엔 가까운 무역적자가 발생한 것과 대조적으로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33조5000억엔으로 35.6% 늘었다. 2017년 기록한 30조엔을 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달러당 엔화 가치가 120엔대로 떨어지면서 수출 기업의 이익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상장사 매출은 500조4000억엔, 영업이익은 37조2000억엔으로 각각 7.9%, 44.8% 늘었다. 반면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서비스 업종의 수익성은 곤두박질치는 등 실적 양극화가 뚜렷해졌다.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